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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Jan 08. 2024

고양이의 양치질

까치야, 까치야.

 

 간호사, 환자 분 좀 잡아 주세요. 아내는 의사 놀이에 심취하여 눈빛만은 이미 명의였다. 환자 상태가 위급하니 긴장 늦추지 마시고, 빨리 스프레이 주세요. 재빨리 아내의 손 위로 고양이 양치용 스프레이를 올려놓았다. 아내는 대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촉각을 곤두세웠다. 흥분한 환자와 시술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양반다리를 하고 허벅지 사이에 아옹이를 가두었다.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된 아옹이의 입을 벌리려 하자 아옹이는 위기를 직감하고는 발버둥을 쳤다. 움직이지 못하게 우악스럽게 등을 누르자 내 손을 물기 위해 입을 가져왔다. 안타깝게도 녀석은 무는 시늉만 할 뿐 실제로 물지는 않았다. 이윽고 아옹이의 입이 개방되자 아내는 재빨리 양치 스프레이를 입 안으로 분사했다. 칙! 누가 보면 입 안으로 칼이라도 들이대는 것처럼 켁 소리를 내며 지랄 발광을 하고 달아났다. 다음 환자인 다옹이는 눈치를 채고 진작에 침대 밑으로 들어가 꽁꽁 숨었다. 양치질을 거부해 어쩔 수 없이 대용으로 스프레이를 사용해 왔다. 그러나 극도로 싫어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치과를 무서워하는 것은 사람이나 고양이나 피차일반이었다. 아옹이와 다옹이의 경우 목욕보다 양치질을 더 싫어했다. 생존을 위해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구강에 이물질이 들어오니 거부하는 것은 당연했다. 새끼 때부터 양치에 대한 거부감이 없게 습관을 들였어야 했는데 이미 늦었다. 한 번 나쁜 기억으로 인식되고 나면 죽을 때까지 거부 반응이 발동했다. 그대로 두자니 치석으로 인한 구강 질환이 염려됐고 그렇다고 매번 전쟁을 치를 수도 없었다. 치석 제거용 사료를 간혹 먹이며 스프레이로 양치를 하는 게 최선이었다. 아옹이는 소파 밑으로 기어 들어가 그루밍을 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듯했다. 혀로 털을 고르고 발바닥을 핥았다.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나르시즘에 빠진 것처럼 정성껏 스스로를 치장하며 자기에 대한 애착을 표현했다. 내가 이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인데 하찮은 인간 놈이 감히 날 해하려 하다니. 아옹이의 자기 사랑은 그렇게 꽤 오랜 시간 진행되었다.


 내 첫 고통의 기억은 치통이었다. 유치가 빠질 무렵 이가 심하게 흔들렸다. 모든 균열에는 필수불가결한 진통이 따랐다. 차라리 애초에 이가 없었다면 아픔도 존재하지 않았을까. 생 눈물을 뚝뚝 흘려 가며 처음 경험하는 고통을 몸으로 받아 냈다. 덜렁거리기 일보 직전인 이를 붙잡고 차마 뺄 용기가 없어서 잡았다 뗐다를 반복했다. 엄마는 내 이에 실을 묶어 이마를 손으로 탁 치며 실을 잡아당겼다. 빠졌어? 손으로 이를 만지며 존재 유무를 확인했다. 이런. 이는 그대로였고 이마의 통증으로 인해 잠시 사라졌던 치통이 다시 고개를 빼꼼히 들었다. 서러움과 아픔에 닭똥 같은 눈물이 비처럼 흘렀다. 왜 사람은 이가 빠져야 되는 거야? 괜히 엄마에게 짜증을 내며 원망의 화살을 돌렸다. 어린 이가 한 번 빠져야 건강한 어른 이가 다시 생기는 거야. 그럼 어른 이가 나면 다시는 이가 빠지지 않는 거야? 엄마는 대답 대신 이마를 세게 후려치며 실을 잡아당겼다. 단번에 이가 빠지지 않자 더 강한 힘으로 때린 것이 분명했다. 아니, 말을 해주고 뽑아야지! 잡아먹을 기세로 덤비며 항의하는데 입 안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면서 거짓말처럼 통증도 사라졌다. 고통에서 해방된 홀가분함에 피가 나는지도 모르고 만세를 외쳤다. 지붕으로 이를 던져야 튼튼한 이가 새로 난다는 엄마의 말에 있는 힘껏 이를 던져 올렸다. 그리고 소원을 빌었다. 까치야, 새로운 이가 생기면 다시는 빠지지 않게 해주렴. 제발 이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줘.

  

 교대근무를 하던 아빠는 집에 없거나 잠만 잤다. 엄마는 생활을 위해 장사를 했는데 늦은 저녁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근처에 살던 할머니가 오셔서 동생과 나의 저녁을 챙겨 주셨다. 소방공무원이던 아빠는 인접 시에서 숙소 생활을 하며 근무했다.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주말이면 엄마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나는 한숨을 왜 쉬는지도 모르면서 엄마를 따라 했다. 밥상에 소시지 반찬이 나오지 않아서, 숙제가 하기 싫어서, 슈퍼마켓에 심부름을 가면서 땅이 꺼지도록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엄마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났다. 한숨을 쉬는 게 왜 잘못된 건지 이해를 못해서 억울했다. 그래도 차라리 아빠가 집에 없는 날이 나았다. 집에 오는 날에 가끔씩 두 사람이 큰 소리를 내며 싸웠다. 다툼의 기미가 느껴지면 동생과 옆 방으로 도망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막았다. 아무리 꼭꼭 막아도 소리는 비집고 내 안으로 들어왔다. 벽을 통해 울려 퍼지는 소리가 마치 치통 같았다.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공포와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 욕설, 울음소리가 순차적으로 들렸다. 이를 너무 꽉 깨물어서 그런지 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간절한 기도가 까치에게 전달됐는지 이는 더이상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충치로 인한 더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치통이 다시 찾아왔을 때 한숨부터 쉬었다. 이런. 또 시작이구나. 학교에서 하루 세 번, 식후 삼 분 이내, 삼 분 이상 양치를 해야 된다고 배웠다. 썩은 이가 가져다주는 진화한 고통 앞에 333 원칙을 지키지 못한 나를 속절없이 원망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듯 열심히 양치질을 했지만 모든 일에는 적기가 있었다. 어느새 고통은 뿌리 깊은 곳까지 침투했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한 채 입에 물을 머금고 버텼다. 작은 이 안에 득실득실한 벌레가 신경을 갉아먹는 꿈을 꿨다. 결국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실내가 온통 새하얀 치과에서 오감 중 청각으로 전해지는 공포가 가장 먼저 나를 반겼다. 이를 갈아내는 듯한 기구의 소음은 실제보다 치료를 더 아프게 꾸몄다. 주먹을 꽉 쥐고 이를 때우고 신경 치료를 받았다. 주먹을 얼마나 꽉 쥐었는지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학교에는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동상이 있었는데, 포즈만 봐도 동상 역시 극렬한 치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충치가 주는 치통은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아픔은 익숙해질 만큼 주기적으로 찾아왔지만 매번 적응이 안 됐다. 습관적으로 까치를 보면 소원을 빌었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까치야, 제발 이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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