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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Feb 28. 2024

카카오톡 선물하기

초대하는 마음

 생일이 돌아오는 것이 끔찍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유년 시절, 남들처럼 거하게 생일 파티를 하지 못했다. 생일을 맞은 반 친구들은 비스킷이나 초콜릿을 붙여 초대장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친하거나 인기 많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초대장을 건네며 생일잔치에 초청했다. 나는 누군가를 초대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거의 초대받지 못했다. 한 번은 부모님이 작은 병원을 하던 여자애에게 초대를 받았다. 문구류나 장난감을 예쁘게 포장해서 파티에 가는 게 국룰이었다. 엄마, 친구 생일 선물 사게 천 원만 주세요. 엄마는 맥없이 돈이 없다고 말했다. 한참을 졸랐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하는 수 없이 택시 운전을 하시던 큰아빠에게 달려갔다. 큰아빠는 두말없이 운전석 아래 거스름돈 주머니에서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를 꺼내 주셨다. 짤그락! 거스름돈 주머니에서 동전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문구점에서 노트와 샤프연필을 포장해 친구의 집으로 달려갔다. 이미 생일잔치가 한창이었다. 빨간 교자상 위에 친구들이 가져온 선물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내가 준비한 선물은 초라하여 전하기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아이들이 불청객을 맞은 것처럼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내 꾀죄죄한 옷차림과 해진 양말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생일 맞은 여자애는 자기 바로 옆에다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생일 파티에 와 줘서 고마워. 네 생일에 나도 꼭 초대해 줘. 그녀는 변변찮은 선물에도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 여자애는 내 선물을 뜯어보지는 않고 대신 케이크 조각을 접시에 올려주었다. 아이들에게 포장지 속 실체를 들키는 것이 두려웠는데 다행이었다. 당시에 시골에서 구경하기 힘든 바나나도 있었고 잡채와 탕수육, 치킨도 차려져 있었다. 허기를 참지 못하고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웠다. 식사를 마치고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무엇이 그토록 부끄러웠는지 사진기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애매하게 시선을 돌렸다. 밖으로 나가 남녀 대항으로 놀이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 이번 생일에는 친구들 불러서 생일 파티 하면 안 돼? 장사를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고달프다는 듯 별 대꾸조차 없었다. 표정이 지워진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차마 더는 떼쓸 수 없었다. 누군가를 초대할 수도, 축하를 받을 수도 없는 생일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차라리 내 생일이 달력에서 지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흔네 번째 생일을 맞았다. 아내가 생일상을 차려 줘서 오랜만에 아침밥을 먹고 출근했다. 몇몇 지인에게 축하 메시지와 전화가 왔다. 나는 다른 사람의 생일을 잘 챙겨주는 편이었다. 누군가는 선물을 받을 때 행복했지만 반대로 줄 때 마음이 더 배부른 사람도 존재했다. 기쁜 마음으로 생일을 챙겨주고 간소한 선물을 전하는 일이 좋았다. 가장 축하를 받아야 하는 날이 오히려 사람을 외롭게 만들기도 했다. 학창 시절, 소풍 가는 날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친구, 운동회나 졸업식에 가족이 오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 세상에 태어난 날, 주인공이 되어 축복받아 마땅한 생일에 행복하지 못했던 기억이 측은지심이 되어 소외된 마음을 살피게 된 것 일지도 몰랐다. 누군가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커피나 케이크 기프티콘을 보내주었다. 선물이 몇 개 쌓이자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몇 해 전 기프티콘을 주고받으며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었다. 매년 친애하는 지인들의 생일에 2~3만 원가량의 기프티콘을 선물했다. 물론 내 생일이 되면 뿌린 그대로 수거할 요량으로 선물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보낸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추하고 병든 마음을 발견했다. 선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생일에 기프티콘을 보내지 않은 사람을 찾아내고 있었다. 아내에게 이 사람은 매년 내 선물을 받기만 하고 내게 돌려주지는 않는다고 흉봤다. 아내는 도리어 나를 나무라며 그렇게 치사한 마음으로 할 거면 차라리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라고 했다. 아내의 말이 백번 맞았다. 대가를 바라고 계산이 들어가는 순간 그것은 더이상 선물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 이제는 생일이 되어도 선물을 기다리며 노심초사하지 않게 되었다. 내 손을 떠난 순간 이미 선물은 내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것이었다. 그 처분과 대응도 순전히 그 사람의 몫이었다. 가끔씩 문득 자기 생일에 나를 초대해 준 여자아이가 궁금해진다. 또한 그날 찍은 사진 속 내 표정은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초라한 행색과 선물을 보지 않고 자기 옆자리를 내어 주었던 아이의 마음이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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