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역할을 넘어서는 주체의 가능성
게임 속 캐릭터는 보통 시스템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체력을 회복하고, 적을 처치하고, 퍼즐을 해결하며, 보스를 쓰러뜨린다. 그는 단지 유저의 입력을 따라 움직이는 아바타이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캐릭터는 단순한 기능적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 존재로 변모할 가능성을 가진다.
우리가 단순히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난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도구에서 존재로 넘어간다.
게임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그가 단순히 목적을 달성하는 기계적 존재가 아니라, 고통을 느끼고, 선택을 고민하고, 실수를 기억하는 존재로 다가올 때, 비로소 실존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게임은 보통 명확한 목표를 설정해준다. ‘공주를 구하라’, ‘세계의 위협을 제거하라’, ‘파괴된 왕국을 복구하라’. 이 목표는 시스템이 설정한 방향일 뿐, 캐릭터가 스스로 선택한 목표는 아니다. 그러나 캐릭터가 시스템의 목적을 거부하거나 의심하기 시작할 때, 그는 단순한 기능에서 벗어나 존재의 가능성으로 나아간다.
예를 들어, 와다와 거상(2005년작)에서 주인공 완다는 사랑하는 여인을 되살리기 위해 거대한 거인을 쓰러뜨리지만, 점차 그 행위가 정말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순간, 그는 단순한 ‘몬스터 헌터’가 아니라, 실존적 고민을 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목표를 거부할 수 없지만, 그 목표의 의미를 의심할 수는 있는 존재.
그것이 실존적 주체의 출발점이다.
캐릭터가 단순한 기능을 넘어 실존적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이해와 자기 의심이 필수적이다.
이는 단지 스토리의 복잡함이 아니라, 캐릭터가 스스로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질문을 던지며, 어떤 변화를 겪는지에 대한 문제다.
니어 오토마타는 이 지점을 매우 극적으로 다룬다. 인간을 대신해 싸우는 안드로이드, 2B와 9S는 자신이 단순한 전투 도구가 아니라, 감정적 갈등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들은 전투 중 단순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가 아니라, 질문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나는 왜 싸우고 있는가?”, “나의 기억은 진짜인가?”, “나의 목적은 나의 것인가?” 이런 질문은 단지 서사를 복잡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실존적 감각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메커니즘이다.
여기서 실존적 불안은 중요한 요소다. 내가 왜 존재하는지 알지 못할 때, 내가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 명확하지 않을 때, 우리는 깊은 불안을 느끼게 된다.
캐릭터가 단순히 목적을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목적을 의심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는 실존적 존재가 된다.
게임에서의 실패는 보통 단순히 좌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의 감각을 일깨우는 중요한 사건이다. 단순히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기술적 실패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철학적 도전에 가깝다.
유저(캐릭터)는 끊임없이 죽고 되돌아온다. 그러나 이 반복 속에서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한계를 깨닫고, 다시 한번 선택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이때 유저는 단순한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 실존적 존재로 재탄생한다. 그는 실패할 때마다 더 깊은 의미를 찾기 위해 다시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점점 더 선명히 이해하게 된다.
결국 캐릭터는 시스템의 일부로 시작하지만, 그가 진정한 주체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선 자기 인식과 의미의 추구가 필요하다. 그는 주어진 목표를 단순히 따르는 도구가 아니라, 그 목표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실존주의는 단순한 역할이 아닌,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자기 결정’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순간, 캐릭터는 더 이상 단순한 픽셀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감정을 담는 그릇이자, 그 안에서 실존적 결단을 내리는 주체로 변모한다.
게임 속 캐릭터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다. 그는 단지 스토리를 진행하는 도구가 아니라, 실패하고, 질문하고, 변화하며, 자신만의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존재다.
그가 단순히 시스템의 일부로 머무르지 않고, 의미를 창조하는 순간, 그는 도구에서 존재로 변한다.
그 존재는 단지 화면 속 픽셀이 아니라, 실존적 결단을 내리는 주체로서, 우리가 선택하고, 기억하고, 마침내 이해하게 되는 모든 순간을 담고 있다. 그 순간, 게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닌, 실존의 연습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