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는 왜 선택 앞에서 불안을 느끼는가
게임은 유저에게 선택지를 제공한다.
“이쪽으로 갈 것인가, 저쪽으로 갈 것인가”, “그를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진실을 말할 것인가, 숨길 것인가”. 이러한 선택지는 마치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기회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이 자유를 단순한 기쁨이 아닌, 공포의 근원으로 바라본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우리는 자유로 ‘선고받은’ 존재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선택해야 하며,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게임 속 선택도 마찬가지다. 유저가 무엇을 선택하든, 그 선택은 곧 자기 정의의 행위가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유저는 단지 플레이어가 아닌, 실존적 주체로 변모한다.
그러나 이 자유는 쾌감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두려움을 불러온다. 왜냐하면 한 번의 선택은 다른 가능성들의 사라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멀티엔딩 게임에서 유저는 모든 선택지를 실험해볼 수 있다. 하지만 첫 번째 선택의 순간, 우리는 그것이 가져올 파장을 알 수 없다.
선의로 한 선택이 재앙을 낳을 수도 있고, 회피한 선택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때 유저는 질문한다. “내가 지금 옳은 결정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시스템이 줄 수 없는, 실존적 불안의 시작이다.
게임은 규칙을 제공하지만, 결과를 예고하지는 않는다. 특히 내러티브 중심의 선택 게임에서는 ‘선택’과 ‘결과’ 사이의 간극이 매우 넓다. 그 간극은 바로 유저의 불안이 자라나는 공간이다.
실존주의에서 불안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키르케고르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라 불렀다. 우리는 수많은 가능성 앞에 놓일 때 비로소 두려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자유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이 아니라, ‘모든 결과에 책임져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어느 캐릭터를 구할지, 어떤 길로 나아갈지를 고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시스템은 계산되었지만, 의미는 비공개다. 유저는 각 선택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모른 채, 도덕적·비도덕적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이 불확실성은 단지 긴장감을 위한 연출이 아니다.
그건 실존적 구조다.
선택은 가능성의 문을 열어주는 동시에, 무수한 문을 닫아버린다. 그 앞에서 유저는 고독해진다. 시스템은 침묵하고, 게임은 응답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판단은 유저의 몫이다. 그 순간,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철학적 결단의 장으로 변한다.
많은 게임은 유저에게 선택의 반복 기회를 제공한다. 세이브 , 되감기 기능, 루프형 설계 등은 마치 실존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조처럼 보인다. 우리는 실수를 되돌릴 수 있고, 최적의 결말을 찾아갈 수 있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선택의 본질은 반복 가능성이 아니라, 순간의 진정성에 있다고 말한다.
언더테일은 이 지점을 정면으로 겨눈다. 언더테일은 유저가 ‘모든 루트를 반복해서 경험해볼 수 있다’는 장르적 규칙을 뒤집는다. 폭력적 선택을 반복한 유저는 ‘패시브’ 루트를 플레이하더라도 게임이 기억하고 있다는 설정을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 유저는 자각한다.
“나는 시스템을 다시 시작했지만, 내가 저지른 선택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구조는 실존주의의 깊은 윤리적 통찰을 반영한다. 선택이 자유로운 이유는 그것이 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되돌릴 수 없기에 우리는 그 순간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그 책임은 외부 시스템이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에게 남는다. 유저는 결국 그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이야말로 진정한 실존적 기록이 된다.
여기서 다시 의문이 제기된다. “시스템이 짜놓은 선택지 안에서 고른 것이 과연 진짜 자유인가?”
실존주의는 이 질문에 대해 복잡하게 대답한다. 사르트르는 “우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자유롭다”고 말한다. 자유는 선택지가 많은 상태가 아니라, 모든 조건 하에서도 결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시스템이 정해놓은 세계 안에서라도 유저가 스스로의 의미를 가지고 선택을 내렸다면, 그는 여전히 자유롭다.
Papers, Please같은 게임은 이 명제를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유저는 단지 입국 심사관일 뿐이며, 선택지는 좁고, 제약은 강하며, 결과는 종종 비극적이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무언가를 결정하는 주체는 유저다. 그 선택은 시스템이 아니라, 의미에 대한 태도로부터 나온다. 이때 유저는 시스템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실존하는 존재로 존재하게 된다.
게임은 우리에게 선택지를 주고, 우리는 그 선택을 통해 서사를 만든다. 그러나 그 서사는 시스템이 제공하는 경로가 아니라, 우리가 부여한 의미를 통해 완성된다. 선택은 단순한 ‘버튼 입력’이 아니다. 그것은 유저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윤리를 가졌는지를 드러내는 실존적 행위다.
실존주의는 선택의 순간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 그것은 무수한 가능성을 지워버리는 결단이며, 반복이 가능하더라도 기억은 지워지지 않기에 진실로 무거운 일이다. 그리고 이 책임의 감각은 시스템이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 스스로 느끼는 자율적 윤리의 흔적이다.
게임은 선택을 던지고, 시스템은 침묵하고, 결과는 흐릿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불안을 껴안고 나아간다. 그것이 진짜 자유다. 의미 없는 가능성의 다발 앞에서, 나는 하나의 길을 택하고, 그 길을 내 것으로 만드는 존재가 된다.
그 순간, 게임은 현실보다 더 진지한 윤리의 장소가 된다. 그리고 유저는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니라, 실존하는 자로, 결단하는 자로, 책임지는 자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