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실존주의 [2] - 게임은 의미를 전달 해줄까?

무의미의 감각과 유저의 자기 해석

by 엠알

게임이 시작되었지만, 시스템은 말이 없다


우리는 게임을 시작하면 모든 것이 설명될 거라고 기대한다.


우리가 어디에 있고,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며,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모든 것은 시스템이 안내해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때때로, 게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목표도, 퀘스트도, 설명도 없이 유저를 낯선 풍경에 던져버린다. 이런 게임은 유저에게 질문이 아니라, 침묵을 제공한다.


NPC들은 단편적인 언어로 중얼거리거나, 비웃거나, 무의미한 조언만을 던진다. 플레이어는 스스로 알아서 탐색하고, 싸우고, 죽고, 세계를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해석은 절대로 완결되지 않는다. 게임은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끝나고 나서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 채 엔딩을 마주할 수 있다.


이런 세계는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무의미한 세계와 연결된다. 인간은 존재하지만, 세상은 그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지 않는다. 세상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발명해야 한다.


침묵은 질문을 강제한다


게임 속에서 의미가 부재할 때, 유저는 반드시 질문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왜 싸우고 있는가?”, “왜 계속 죽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단지 게임의 서사적 배경을 궁금해하는 게 아니다. 이건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반복해서 말한 주제이기도 하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물음 던지는 존재”라 했다. 세계가 침묵할수록, 인간은 더 깊이 묻게 된다. 세계가 설명하지 않을 때, 인간은 스스로 설명을 만들어야 한다.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데 한 인디게임 《Journey》에서는 텍스트가 없고, 고로 대화도 없다. 유저는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자신이 가는 목적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어떤 모래 언덕 위를 넘고, 어떤 유저와 만나며, 때로는 파괴되고, 때로는 부활한다. 게임은 단 한 마디도 우리에게 의미를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이유 없이 감동하고, 이유 없이 의미를 발견한다.


시스템은 질서를 제공하지만, 의미는 아니다


많은 유저가 게임 시스템의 정교함을 칭찬한다. 전투의 피드백 루프, 자원 수급의 밸런스, 적의 인공지능, 맵의 설계 구조 등. 이 모든 것은 세계를 ‘기능적으로 설명’하는 장치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시스템은 유저에게 목표를 줄 수는 있어도, 그 목표가 왜 중요한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이 구분은 실존주의에서 매우 중요하다. 의미는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다. 목표는 시스템이 설정할 수 있지만, 그 목표를 ‘선택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오직 주체의 몫이다. 예를 들어, RPG 게임에서 “마왕을 처치하라”는 퀘스트는 단지 게임의 흐름을 위한 조건일 뿐이다. 하지만 유저가 그 목적을 ‘정의롭다’고 느낄지, ‘의문스럽다’고 느낄지는 각자의 플레이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시스템은 절대로 이 의미를 강요하지 못한다.


이때 유저는 실존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게임은 “이쪽으로 가라”고 말하지만, 유저는 그 길을 의심하고, 거부하거나, 지체할 수 있다. 실존주의가 말하듯, 진정한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다. 유저는 시스템이 제공하는 기능적 질서 위에 자신만의 의미적 질서를 덧입힌다. 그리고 이 의미화 행위가 바로 실존주의적 실천이다.



타인은 세계를 해석하지만, 진실은 스스로 구성해야 한다


유저는 게임 세계를 혼자 탐험하지 않는다.


항상 그 주변에는 다른 존재들이 있다. NPC이든, 동료 캐릭터이든, 가끔은 또 다른 유저이든. 이들은 유저에게 정보를 주거나, 목적을 알려주거나, 때로는 조언을 건넨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세계의 진실’은 언제나 파편적이며, 주관적이며, 상충된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남긴 바 있다. 그것은 타인이 항상 나를 규정하고, 해석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게임 속에서도 타인은 세계를 정의하려 들고, 유저의 역할을 단정지으려 한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말한다. 그 어떤 해석도 나를 대신할 수 없으며,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의 의미를 구성해야 한다.


유저는 주변 인물들이 던지는 다양한 조각들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며, 점점 더 자기만의 내러티브를 만든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유저는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된다. 진실은 시스템이 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진실은 내가 결정한 것이다. 의미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실존주의의 윤리적 토대다.




설명 없는 세계에서 말하는 존재


우리는 게임을 시작하며 목표를 찾지만, 종종 그 목표는 설명되지 않는다. 시스템은 정교하고 논리적일 수 있지만, 세계는 여전히 차갑고 말이 없다. 아무도 “왜”라고 묻지 않으며, 누구도 “무엇을 위해서”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그 침묵 속에서 유저는 점점 질문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질문이 깊어질수록, 의미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실존주의는 말한다. “세계는 의미를 제공하지 않는다. 의미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시스템은 규칙을 주지만, 삶은 방향을 요구한다. 유저는 그 둘 사이에서 끊임없이 해석하고, 실패하고, 다시 구성하며 나아간다. 그 반복 속에서 유저는 단순한 플레이어가 아니라, 세계를 의미화하는 실존적 주체로 태어난다.


그러므로 침묵하는 세계는 결코 공허한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유저가 스스로를 정의하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철학적 여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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