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실존주의 [8] - 반복과 자유의 역설?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자의 불안

by 엠알

다회차, 선택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가?


게임에서 다회차플레이는 흔한 요소다. 엔딩을 본 후에도 다시 시작하여 다른 루트를 선택하거나 숨겨진 이야기를 탐험하는 것, 혹은 최적의 결과를 찾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이 다회차가 자유의 본질을 왜곡하고, 선택의 무게를 희석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예를 들어, 언더테일은 유저가 모든 루트를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그 반복은 단지 스토리의 확장이 아니라, 선택의 본질을 흔드는 행위로 작용한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비폭력적인 패시브 루트를 선택하더라도, 이전에 이미 폭력적 선택을 한 기억을 지울 수 없음을 강조한다. 게임 시스템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양심이 그 선택을 기억한다. 이때 플레이어는 단지 스토리를 다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실존주의는 선택이 단순히 가능한 여러 갈래의 길이 아니라, 그 선택의 무게와 결과를 감당하는 결단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다회차는 그 무게를 지우고, 선택을 단지 다양한 가능성의 조합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이는 자유의 희석이며, 자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지점이다.


무한 반복은 자아를 소멸시키는가?


게임에서의 반복은 때로 자아의 붕괴를 초래한다. 같은 사건을 무한히 반복하고, 같은 선택을 계속하면서, 유저는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단지 서사의 문제가 아니라, 실존적 자기감각의 소멸이다.


니어오토마타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이 게임에서 유저는 동일한 사건을 2B, 9S, A2라는 서로 다른 캐릭터의 시각으로 반복해서 경험한다. 그러나 그 반복은 단순한 서사의 변주가 아니라, 자신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의심을 유발하는 장치다. 유저는 처음에는 단지 기계적 전투 병기로 시작하지만, 점차 반복적인 기억과 회귀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의 선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깊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특히 9S는 같은 사건을 반복할수록 점점 더 혼란에 빠지며, 자신이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감정을 가진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단지 구원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붕괴로 이어진다. 그는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의 무게는 매번 반복될 뿐이다.


그 순간, 자유는 구원이 아니라, 끝없는 자아의 해체로 변모한다.


반복은 선택의 의미를 약화시키는가?


다회차는 유저에게 모든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자유는 때로 선택의 무게를 희석시킬 위험이 있다. 같은 사건을 여러 번 반복하고, 다양한 결과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선택은 단순한 데이터 입력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팀에서 플레이가 가능한 Repentant는 이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이 게임은 과거의 실수를 후회하는 남성의 이야기를 다루며, 유저가 그의 선택을 반복적으로 되돌리면서 점점 더 깊은 죄책감과 자기 의심에 빠지게 만든다.


그는 단순히 과거의 실수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직시하고, 그 무게를 견뎌야 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이때 유저는 단순히 다른 결과를 탐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이 정말로 의미 있었는지를 스스로 되돌아보게 된다.


또한, 더 포가튼 시티는 고대 로마의 비밀을 탐험하는 과정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을 다룬다. 유저는 같은 사건을 수없이 반복하지만, 그 반복이 단순한 퍼즐 풀이가 아니라, 인간의 도덕성과 선택의 결과를 시험하는 과정이 된다.


단순한 엔딩 수집이 아니라, 어떤 선택이 진정으로 옳은 것인지를 끊임없이 되묻게 만든다. 그 결과, 유저는 단순히 결과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점점 더 깊이 고민하게 된다.


이 순간, 유저는 단순한 스토리 소비자가 아니라, 선택의 의미를 끊임없이 재해석하는 주체로 변모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유의 환상이 서서히 벗겨지고, 자신이 단지 설정된 경로를 탐험하는 실험체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엔딩의 수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본질을 묻는 철학적 도전이다.


다회차는 실존적 기억을 지우는가?


게임에서의 반복은 때로 기억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같은 사건을 다시 겪고, 같은 대화를 반복하며, 같은 적과 싸우는 과정에서 유저는 점점 자신의 경험을 잃어버리는 위험에 처한다. 이는 단순한 스토리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붕괴를 의미한다.


국내 인디게임 명작 중 하나이 화이트데이는 이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다. 이 게임은 유저가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살아남으려 시도하는 동안 점점 더 그 장소의 공포와 불안에 잠식되는 과정을 그린다. 유저는 같은 복도를 걷고, 같은 문을 열며, 같은 위협을 반복적으로 피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점점 더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 반복은 단순한 공포 경험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를 점점 더 의심하게 만드는 장치다.


또한, MMORPG 게임에서도 반복적인 퀘스트와 전투는 유저의 정체성을 점차 지워나간다. 수많은 적을 쓰러뜨리고, 수백 번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유저는 점점 자신이 왜 이 세계에서 싸우고 있는지를 잊어가게 된다. 단지 경험치와 아이템을 얻기 위해 반복하는 존재로 변하며, 그 순간, 실존적 주체가 아니라, 단순한 기능적 객체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반복은 자유를 파괴하는가, 아니면 강화하는가?


다회차는 단순히 또 다른 엔딩을 보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동시에, 자기 정체성의 파괴를 의미할 수도 있다. 우리는 같은 길을 반복하며, 같은 선택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자유를 확장하는 동시에, 그 자유의 본질을 잃어갈 위험에 처한다.


그러므로 반복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실존적 도전이다.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유저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재정의하는 주체가 된다. 그 순간, 게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실험으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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