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실존주의 [7] - 책임의 구조

유저는 정말 자신의 선택을 책임질 수 있는가?

by 엠알

선택은 무겁다, 그 결과는 더 무겁다


게임은 유저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만, 그 선택의 결과를 진정으로 책임지게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게임은 단순한 분기점에서 시작하여, 유저가 특정한 길을 택하면 다른 가능성은 사라지고, 결말의 형태만 조금 변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단지 선택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책임의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우리는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고 말했다. 자유는 단지 많은 선택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단지 여러 갈래의 길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이 가져올 결과를 전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존재다.


예를 들어, 몇몇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은 단순히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이 가져올 윤리적 무게를 유저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초반의 작은 결정이 나비효과처럼 퍼져나가 친구의 죽음이나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유저는 단순히 “A를 선택했으니 B의 결과를 본다”는 기계적 관계를 넘어, “내가 선택한 길이 가져온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깊은 책임의 무게를 경험하게 된다.


이때 유저는 단순한 선택자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정의하는 주체로 변모한다. 그는 단지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 만들어낼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 순간,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철학적 결단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되돌릴 수 없는 선택, 진정한 책임의 시작


그러나 현실의 선택과 달리, 게임은 보통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구조를 가진다. 세이브 파일, 체크포인트, 다시 시작하기. 우리는 실수를 반복할 수 있고, 언제든 잘못된 길에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야말로 진정한 책임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스펙옵스: 더 라인》은 이 점에서 매우 특별한 게임이다. 이 게임은 유저에게 전쟁 속에서 끊임없이 도덕적 결단을 요구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되돌릴 수 없다. 특히 ‘백린탄’을 사용하는 장면은 유저가 단순한 군사적 승리를 위해 선택한 행동이 엄청난 인도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순간, 유저는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로 변한다.


이 경험은 단순히 “결말이 달라진다”는 차원이 아니라, “나는 이 선택을 정말로 옳다고 생각했는가?”라는

깊은 자기 성찰을 유발한다. 이때 유저는 단지 이야기를 따라가는 소비자가 아니라, 윤리적 결단을 내리는 실존적 주체가 된다.


후회와 실존적 죄책감


그러나 선택의 무게는 단지 결과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때로 후회와 죄책감을 동반한다.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선택이 항상 옳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존주의는 이 지점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왜냐하면, 후회는 단지 과거의 실수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반성하는 깊은 자기 성찰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복수를 선택한 엘리가 그 복수가 가져온 파괴와 상실 속에서 스스로의 선택을 끊임없이 반추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녀는 복수를 통해 정의를 구현하려 했지만, 결국 자신의 선택이 만들어낸 피로 얼룩진 길에서 심각한 자기 회의와 후회에 빠진다.


이때 유저는 단순히 캐릭터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것이 실존주의가 말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선택”의 무게다. 그리고 그 무게는 단지 점수나 엔딩의 차원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선택의 후회는 진정한 자기 성찰의 시작이다


실존주의는 “선택의 자유는 책임의 무게와 함께 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책임은 단순히 결과를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가져오는 후회와 죄책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후회는 단순한 실수의 기억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계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레드 데드 리뎀션2》는 주인공 아서 모건의 선택이 가져오는 무거운 후회를 게임의 핵심 서사로 삼고 있다. 아서는 초반에는 단지 갱단의 일원으로, 그저 생존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단순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의 선택이 점점 더 복잡한 윤리적 갈등으로 이어지면서 그 자신이 누구인지, 그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깊은 질문으로 변모한다.


특히 게임 후반부, 그는 자신의 과거 선택이 가져온 결과들을 되돌아보며 진정한 자기 성찰의 순간을 맞이한다. 이 순간, 아서는 단순히 총잡이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회의하는 실존적 주체로 변모한다. 그는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재정의하려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가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은 그 어떤 승리보다도 깊은 실존적 이해를 동반한다.


선택은 단지 기계적 결정이 아니다


게임에서의 선택은 단순한 분기점이 아니다. 그것은 유저가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결단의 순간이다. 그 선택이 가져오는 후회와 죄책감,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실수의 기억은 단지 엔딩의 변화를 넘어서, 우리의 자기 인식을 깊이 변화시키는 실존적 경험이다.


우리는 게임에서 수없이 선택하고,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두려워하지만, 그 두려움이야말로 자유로운 존재의 본질이다. 자유는 단지 많은 길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이 가져올 모든 결과를 감당하는 용기다.


그리고 이 용기를 가진 순간, 유저는 단순한 플레이어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재창조하는 실존적 주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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