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함과 반복의 존재, 끝없는 재시작의 실존적 감각
대부분의 게임은 명확한 엔딩을 목표로 설계된다.
그러나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진짜 엔딩은 존재하지 않을 때 더 진실한 경험이 된다. 삶이란 본래 방향 없이 던져진 채, 끊임없이 질문하고, 실패하고, 반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게임 속에서 우리는 이 무한한 반복의 구조를 자주 마주한다.
《하데스》시리즈는 그 대표적인 예다. 주인공 자그레우스는 지하 세계를 탈출하려 하지만, 죽을 때마다 다시 지하로 되돌아간다. 그는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자신의 본질과 관계를 재구성하게 된다. 그는 단순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발견하는 여정을 걷는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자그레우스의 목표가 단순히 “탈출”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매번 실패하고 죽으면서도, 아버지와의 갈등, 어머니의 진실, 신들과의 관계를 재해석하게 된다.
즉, 탈출이란 단지 물리적인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의미를 찾아가는 실존적 탈출이다. 이것은 단순한 게임의 반복을 넘어, 실패를 통한 자아 발견의 과정을 체험하게 만든다.
이때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공간으로 변모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순히 엔딩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반복 속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찾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한 반복이 언제나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순간 반복은 단순한 루틴으로 전락하고, 그 안에서 의미는 쉽게 사라진다. 이때 우리는 실존적 허무에 빠진다. “왜 나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가?” “이 모든 행동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게임 내 내러티브의 문제가 아니라, 실존적 불안을 자극하는 깊은 물음이다.
게임 《Returnal》은 이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룬다. 주인공 셀린은 죽을 때마다 낯선 행성에서 다시 깨어나며, 끝없는 반복 속에서 자신의 과거와 트라우마를 직면해야 한다. 그녀는 매번 죽고 깨어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해석하게 된다. 그러나 이 반복이 단순한 기계적 재시작에 그치는 순간, 플레이어는 의미를 상실할 위험에 처한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의미를 다시 창조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반복이 단지 기계적 루틴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그 안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다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셀린은 단순히 행성을 탈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을 복원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존재를 새롭게 정의하는 여정을 걷는다. 그 순간, 루프는 단지 물리적 반복이 아니라, 실존적 성장의 계기가 된다.
게임에서 반복은 때로 의미의 부재로 작용하지만, 반대로 그 반복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메커니즘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재해석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아우터 와일즈》는 우주 탐사를 주제로 한 게임이지만, 그 본질은 “알아가는 과정”에 대한 실존적 성찰이다. 유저는 타임 루프 안에서 매번 같은 행성을 탐험하고, 같은 사건을 반복해서 마주하며, 점점 더 깊은 진실에 다가간다. 이 반복 속에서 우리는 처음에는 단지 정보를 수집하는 탐험가였다가, 점점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철학적 주체로 변모한다.
중요한 점은, 이 게임이 단지 ‘정보 수집’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다음 퍼즐을 풀기 위해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해 보이는 반복 속에서 자신을 정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매번 같은 태양이 폭발하고, 같은 행성이 붕괴하고, 같은 음악이 울려 퍼지지만, 그 반복은 매번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유저는 처음에는 단지 우주를 탐험하는 존재였지만, 점점 그 자신이 우주의 비밀을 품고 있는 미스터리 그 자체가 된다.
이 순간, 유저는 단순한 도전자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해석하는 실존적 탐구자가 된다. 이는 단순한 메커니즘의 반복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의미를 끊임없이 창조하는 실존적 사건이다.
반복이 단순히 루틴에 그치지 않고 의미를 얻기 위해서는, 그 안에 실패의 감각이 포함되어야 한다. 실패는 단순한 후퇴가 아니라, 의미를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데스루프》는 이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다. 주인공 콜트는 끝없는 루프 속에서 자신의 암살자와 대결하며, 단순한 생존을 넘어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아간다. 그는 단순히 적을 처치하고, 퍼즐을 풀고,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왜 자신이 이 루프에 갇혔는지, 왜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순간, 루프는 단순한 게임 시스템이 아니라, 실존적 자각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유저는 매번 죽고, 다시 시작하며, 기억을 축적하고, 그 과정에서 점점 더 깊은 자기 이해에 도달한다.
그는 단순히 탈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묻는 존재로 변모한다. 실존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진정한 자유는 반복 속에서 스스로를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유저가 단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다시 정의하는 순간, 게임은 단순한 루프에서 실존적 성장의 장으로 변모한다.
엔딩이 없는 게임, 끝이 없는 루프, 무한히 되돌아가는 시간. 이 모든 것은 단순한 패배나 좌절의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끊임없이 의미를 찾아가는 실존적 경험이다. 게임에서의 루프는 단지 시스템의 반복이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서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는 과정이다.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플레이어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주체로 변모한다.
그러므로, 진짜 엔딩은 없다.
그러나 그 반복의 끝에서 우리는 진정한 시작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