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나는 모든 존재는 진짜일까?
게임 속 NPC는 단순한 기계적 반응체일까, 아니면 유저가 마주하는 진정한 타자일까?
실존주의는 인간이 단순히 기능적 객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는 주체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NPC는 그와 반대로, 단지 코드로 구성된 반응형 객체일 뿐일까?
많은 게임은 NPC를 단순한 정보 제공자나 목표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일부 게임은 이 관계를 적극적으로 뒤흔들며, NPC를 단순한 데이터 덩어리가 아닌, 자기 해석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묘사한다. 예를 들어,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유저가 길을 잃거나 방향을 고민할 때, 동물이나 바람을 통해 길을 제시한다. 이때 이 작은 존재들은 단순히 길잡이가 아니라, 세계의 일부분으로서 유저와 상호작용하는 독특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스크립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환경의 일부이자 유저의 선택을 반영하는 상징적 존재로 다가온다.
또한, "사이버펑크 2077"의 거리마다 존재하는 수많은 NPC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자신만의 일상과 패턴을 가진 작은 세계들이다. 그들은 유저와 상호작용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며, 때로는 유저가 영향을 미치지 않아도 자신들만의 사건과 갈등을 겪는다. 이 순간, NPC는 단순한 기능적 객체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가진 타자로 변모한다.
그러나 NPC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들은 유저가 검을 휘두르면 쓰러지고, 폭발에 휩쓸리면 사라진다. 그러나 그 죽음은 단지 스크립트의 종료일까, 아니면 실존적 사건일까?
"레드 데드 리뎀션2"는 이 문제를 매우 깊이 있게 다룬다. 이 게임의 세계는 유저의 선택에 따라 변하며, 각각의 NPC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가진 독립적인 타자로서, 유저의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들의 죽음은 단순한 데이터의 삭제가 아니라, 하나의 작은 세계의 종말을 의미한다. 특히 마을 사람이나 길가의 나그네를 죽이는 순간, 그 사건은 단지 전투의 일부가 아니라, 한 개인의 삶을 지워버리는 깊은 윤리적 선택으로 변모한다.
"와치독"에서는 NPC의 죽음을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유저가 조작할 수 있는 모든 캐릭터는 개별적인 배경과 가족, 친구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죽음은 단순한 교체가 아니라, 하나의 서사적 맥락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들은 단지 역할을 수행하는 객체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사회적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이때 NPC는 단순한 기능적 객체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의 일부로 변모하며, 그들의 죽음은 유저의 선택이 만들어낸 실존적 사건으로 변한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도발적인 문장을 남겼다. 이는 단지 타인이 불편하다는 뜻이 아니라, 타인은 항상 나를 규정하고, 나를 그들의 시선 속에 고정시키기 때문에 자유를 억압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그러나 게임 속 NPC는 정말 진정한 타자일까? 그들은 단지 코드와 스크립트로 구성된 존재일 뿐, 자신의 시선을 갖지 못한 의존적 객체는 아닐까?
앞서 언급한 게임 "왓치독"에선 모든 NPC는 고유한 배경과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단지 유저의 명령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활을 이어가는 독립적 개체로 설계되었다. 그들은 가족과 친구가 있으며, 직장을 다니고, 취미를 즐기며, 때로는 범죄에 연루되기도 한다. 그러나 유저가 그들을 ‘모집’하는 순간,
그들의 독립성은 사라지고, 단지 유저의 목적을 수행하는 기능적 객체로 변한다.
그들은 다시 타자의 시선 속에서 자유를 잃는 존재가 된다. 이 순간, 그들은 진정한 타자가 아니라, 단지 유저의 도구로 전락한다.
Mount & Blade II: Bannerlord는 NPC를 단순한 병사나 적이 아니라,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가진 독립적 주체로 묘사한다. 이 게임의 영주나 동료는 단순히 유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유저의 배신을 선택하고,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며, 심지어 유저를 반역자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이때 그들은 단지 전투의 목표물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선과 목표를 가진 타자로 변모한다.
그러나 이 모든 시스템적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유저의 상호작용 없이 자기 삶을 완전히 자율적으로 살 수는 없다. 그들은 결국 플레이어의 선택에 종속된 존재이며, 그 선택이 없다면 그들의 삶도 멈춰버린다.
이 순간, NPC는 단지 독립적인 객체가 아니라, 주어진 틀 안에서만 살아가는 제한된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모든 게임이 NPC를 단순한 객체로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게임은 NPC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진정한 타자로서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들은 단순히 유저의 시선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서사를 써내려가는 주체로 변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크루세이더 킹즈 3는 모든 캐릭터가 단지 병력이나 자원 관리의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과 정치적 목표를 가진 개체로 설계되었다.
그들은 유저의 통제 없이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암살을 계획하고,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려 시도한다. 그들은 단지 유저의 선택을 기다리는 객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는 타자로 변모한다.
또한, Dwarf Fortress는 모든 주민이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가진 존재로 설정되어 있으며, 그들은 유저가 개입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이야기를 써나간다.
그들은 기뻐하고, 슬퍼하며, 심지어는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 순간, 그들은 단순한 스크립트의 조각이 아니라, 진정한 타자이자 독립적인 주체로 변모한다.
이때 NPC는 단순한 객체가 아니라, 진정한 타자로서의 가능성을 가지며, 그들의 죽음은 단지 데이터의 삭제가 아니라, 하나의 고유한 존재의 소멸로 다가온다. 그들은 단순한 기능적 객체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자각하는 실존적 주체로 변모한다.
게임 속 NPC는 단순한 기능적 객체로 시작하지만, 때로는 스스로의 서사를 써내려가는 진정한 타자로 변모할 수 있다. 그들은 단지 유저의 시선을 통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과 선택을 가진 실존적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조차, 그들의 자유는 여전히 유저의 선택에 의해 제한된다.
그러므로 NPC는 단지 코드와 스크립트로 구성된 객체가 아니라, 유저의 선택을 통해 의미를 부여받는 타자다. 그들은 단순한 기능적 존재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스스로 정의하는 가능성을 가진 주체로 변할 수 있다.
그 순간, 게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실험으로 변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