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아나키즘 ④ - 게임과 권위

보이지 않는 통제자들

by 엠알

게임은 자유로운 공간처럼 보인다.


우리는 마음껏 캐릭터를 움직이고, 전장을 누비며, 도시를 세우고, 때로는 악당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자유는 진짜 자유일까? 혹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설계 아래에서만 자유롭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아나키즘은 권위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왜 우리는 누군가의 지시를 따르는가? 왜 특정한 질서만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 권위는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게임은 이런 질문을 던지기에 아주 흥미로운 매체다. 겉으로는 유저가 주체이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개발자(기획자, 디자이너)의 숨결이 존재한다.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게임의 모든 구조와 가능성을 미리 정해놓는다.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권위에 얼마나 순응하고 있을까?


개발자는 신인가, 사회공학자인가


게임 개발자, 디자이너는 일종의 ‘세계의 창조자’다.


그는 세계의 규칙을 정하고, 유저가 경험할 수 있는 감정과 선택지를 설계한다. 그의 손끝에서 게임의 구조, 난이도, 경제 시스템, 심지어 도덕적 딜레마까지 결정된다.


이 구조는 철학자 홉스(Thomas Hobbes)가 말한 ‘리바이어던’과도 비슷하다. 유저들 사이의 혼란과 충돌을 막기 위해, 게임은 보이지 않는 절대 권위를 설정한다. 이 권위는 일종의 안전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유의 한계를 설정하는 통제 장치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특정 스킬트리를 타지 않으면 절대 클리어할 수 없는 구조, 정해진 퀘스트 루트를 벗어나면 게임이 정지되는 구조, 혹은 시스템이 허락하지 않는 방식으로는 아무리 시도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구조. 이 모든 건 게임 개발자라는 통제자의 의지로 결정된다.


우리는 ‘플레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가 미리 설계한 통제된 자유의 환상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게임 시스템은 중립적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게임 시스템을 ‘중립적인 도구’로 생각한다. 하지만 게임 시스템 역시 가치 판단과 세계관을 내포한 구조다.


예컨대, 경쟁을 기본으로 설계된 게임은 능력주의, 승자독식, 배제의 논리를 기본 전제로 삼는다. 반면 협동을 강조하는 게임은 상호의존, 공존, 공동의 목표 달성이라는 가치를 심는다. 즉, 게임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그 설계 구조 자체로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아나키즘의 시선은 이 구조를 해체한다.


“왜 이 게임은 경쟁을 기본 전제로 삼는가?”


“왜 누군가는 리더가 되고, 누군가는 항상 추종자가 되는가?”


“유저가 시스템을 수정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이러한 질문은 게임이라는 공간에서 권위의 정체를 폭로하고, 유저가 그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대하게 만든다.


NPC, 튜토리얼, 퀘스트… 은밀한 권위들


게임 속에는 다양한 형태의 ‘은밀한 권위’가 숨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NPC다. 이들은 보통 유저에게 정보를 제공하거나 퀘스트를 주며 세계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겉보기엔 도움을 주는 가이드지만, 실은 게임이 허용하는 행동과 방향을 우회적으로 제시하는 도구다.


또한 튜토리얼은 게임의 세계관과 규칙을 유저에게 강제적으로 주입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조작하라”, “이 방향으로 나아가라”, “이건 하지 마라.” 튜토리얼을 통해 유저는 게임의 ‘표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길들여진다.


퀘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유저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행동은 목표와 보상이 연결된 선택지들 중 하나일 뿐이다. 게임은 유저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미리 설정된 정답을 고르게 유도한다.


이 모든 구조는 권위의 작동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권위는 억압이 아니라, 길들이기를 통해 작동한다.


통제를 인식하는 순간, 자유가 시작된다.


아나키즘은 무정부 상태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통제’를 비판하고, 그 대안적 질서를 상상하는 사상이다. 그리고 게임은 그 통제를 가장 정교하게 구현하고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유저가 그 통제를 의식하게 되는 순간, 게임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변한다.


그때부터 유저는 그저 퀘스트를 수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게임의 구조 자체를 질문하고, 그 틀을 깨트릴 방법을 모색하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비판적 플레이’는 아나키즘의 핵심인 자율적 사고, 권위에 대한 의심, 새로운 질서의 상상과 연결된다.


보이지 않는 권위를 넘어서는 플레이


게임은 설계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항상 완전히 길들여진 존재만은 아니다. 때로는 게임의 의도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게임이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질서를 만들기도 한다. 아나키즘은 우리가 그 보이지 않는 권위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리고 게임은 그런 질문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도 강력한 공간이다.


우리는 단지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규칙, 구조, 통제를 분석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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