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내리는 선택은 진짜 자유일까, 아니면 잘 설계된 환상일까?”
게임을 하며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이 질문은,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철학적 통찰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질문은 아나키즘이라는 사상과 만날 때 비로소 더 깊이 있게 파고들 수 있다.
아나키즘은 외부의 권위 없이, 개인과 공동체가 자율적으로 질서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게임은 애초에 ‘규칙(rule)’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구조다. 그렇다면, 규칙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우리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모든 게임은 ‘규칙’으로 시작된다. “점수는 어떻게 얻는가?”, “어떤 행동이 금지되는가?”, “어떻게 승리하거나 실패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면, 게임은 그저 혼란스러운 행위에 불과하다.
게임 디자이너이자 덴마크 디자인 스쿨의 부교수 Jesper Juul은 이를 “게임의 필수 요소”로 정리하면서,
게임은 현실보다 더 엄격한 규율을 가지며, 그 안에서만 의미 있는 행동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즉, 게임의 세계는 이미 강력하게 설계된 체계 위에 존재한다. 모든 자유는 그 규칙 안에서만 주어진다. 이것이 바로 “통제된 자유”의 핵심이다. 겉보기에는 무한한 선택이 가능한 것 같지만, 그 모든 선택지는 개발자가 허용한 자유에 불과하다.
이 지점에서 아나키즘과의 첫 번째 충돌이 발생한다.
진짜 자유란 무엇인가?
허용된 자유는 자유인가, 아니면 우아하게 설계된 감옥인가?
게임은 유저에게 “네가 원하는 대로 해도 돼”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상 그 ‘원함’조차 시스템이 유도한 선택이다. 퀘스트가 제시되고, 보상이 기다리고, 특정 루트가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유저는 결국 그 “자유로운 경로”를 따라간다.
이런 구조는 마치 철학자 푸코(Michel Foucault)가 말한 “규율 권력”을 떠올리게 한다. 감시와 처벌 없이도 사람들을 특정 행동으로 유도하는 권력이라는 뜻 이다. 게임 역시 유저를 감시하거나 억압하지 않지만, 시스템 안에서 스스로 규범을 따르게 만든다.
그렇다면 아나키즘은 게임 속에서 환상에 불과한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듯 하다.
여기서 중요한 전환점이 생긴다.
비록 게임은 규칙 위에서 작동하지만, 일부 게임은 그 규칙을 유저가 ‘해석’하거나 ‘변형’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바로 그 틈새가 아나키즘이 들어설 수 있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마인크래프트(Minecraft)는 기본적인 규칙(블록을 놓고 부수기)만 존재하고, 그 외의 목표나 규범은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그 세계에서 유저는 도시를 세우기도, 파괴의 신이 되기도, 자급자족 공동체를 만들기도 한다. 모든 것이 유저의 자율성에 달려 있다.
또한 유저 간 협의로 규칙이 만들어지는 커뮤니티나, 개발자의 의도를 거스르는 플레이 방식도 아나키즘적 상상력의 발현이다. 이처럼 어떤 게임은 규칙 속에 자유를 허용하고, 어떤 게임은 규칙 자체를 유동적으로 만든다. 이것이 디지털 공간에서의 아나키즘적 가능성이다.
많은 서사 중심 게임들은 “선택지를 제시”함으로써 자유를 강조한다. 하지만 주어진 몇 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정말 자율적인 결정일까?
여기서 선택은 단지 분기점이 아니라, 유저의 ‘사상’이 게임 안에서 실현되는 실험 장소가 된다. 그런 방식의 자유라면, 아나키즘적 감수성과 분명히 연결될 수 있다.
게임은 통제로 이루어진 세계지만, 그 안에서도 자유를 상상하고 실현할 수 있는 여지는 존재한다. 때로는 그 통제를 깨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 안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나키즘은 완전한 무정부 상태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중앙 권위 없이도 스스로 규범을 만들고,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는 공동체를 꿈꾼다.
게임은 그 꿈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독특한 장르다.
그리고 우리는 유저로서,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그 세계를 해석하고 다시 써내려가는 존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