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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은월 시인 김혜숙 서재

by 은월 김혜숙




수십 년의

별반 다름없는 계절이 오고 갔다

수백 년 수억 년을 배회하다 온 망자처럼

써걱거리고 초점을 잃은 셔터 소리는

철커덕철커덕하더니

아날로그는 가고 디지털이 희롱한다

팔이 잘려나가 손마디만 독거미처럼

기어서 피를 빨아먹어 가는 것을 털어 가며

안간힘을 쓰고 목숨을 부지하려 자꾸만

두 눈을 깜박이며 살려 달라 신호를 밤낮 했다

아날로그의 기법이 낡아 버려지기까지

손톱이 갈리고 집게 집힌 인화지는 풀풀 날려

현상실에 불은 밤새 켜져 어린 아기 젖 물리고

밤은 토닥토닥 이듯 날밤을 끼고 드나들던

아날로그 그 무게와 페이퍼 실크 로지

환한 대낮처럼 손가락이 가벼워지고

숱하게 지웠다 써 재껴도 동나지 않는

피사체 잡는 집요한 눈동자는 디지털의

맹렬한 진념이 이데올로기를 타고

목숨 잡는 독거미의 승리로 가는가 싶다

그런 긴 이력들이 늘어질 대로 늘어지고

이젠 자포자기의 셔터 소리는 라이트 반사로

없었던 병마처럼 경기驚氣가 찾아든다


디지털은 영원할 것인지

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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