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억
문뜩 떠오른다
그해 겨울 난데없는 시베리아 바람
서로 손을 잡고 있어도 선득선득
벌써 주점 안에는 오가는 입김이 뽀얬다
어수선한 사람들 틈새로
눈앞에 시야가 쓸모없이 흐려 은신조차
할 수 없는 무언가에 절실함이 가득 차고
그저 청춘은 이유가 없었다
끊임없는 물음으로
그렁그렁 걸린 눈에 담긴
유리구슬방울 소리에
애꿎은 가슴만 부비다 부비다
봇물 터지듯 함박눈이 내리는 날
주점 밖으로 뛰쳐나온
허세와 멋이 잔뜩 입술을 꾹 누르며
누가 떠넘겨 준 아픔도 아닌
이유 없는 청춘이
빌딩을 삼키고 가로등을 덮어 길을 막는
눈발을 맞으며 발이 시리도록 걷고 또 걷던
1970년 후반기 소공동 길
명동 길로부터 광화문 거리에서
쓸데없이 머뭇머뭇하다
오가는 수많은 인파에 묻혀 서성거리고
지금 생각하면 아플 일도 아닌데
펑펑 내리는 길에 쌓인 슬픔을
눈 구덩이에 파묻고 파묻었다
그 겨울의 끝자락 실패한 입시 고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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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황 > -은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