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선생님 20주기 기념식 날 왜관에서
버스를 오르고 옛 추억으로 들어갔다
종로 거리를 책가방 끼고 재수학원 골목을 누비다
히죽히죽 웃으며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친 추억의 학창 시절
담배꽁초를 줍던 그 녀석들
시를 읊는다 하고 유행가를 멋들어지게 부르던
그녀도 먼 나라에 살고 갔다
몇 시간을 달려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왜관
구상 선생님 앞에
내가 내내 읊은 꽃자리는 그 옛날
그 녀석들과 그녀들이 부끄러워했던
재수 시절의 학원가에 흑백 속이
왜 아른거린 것인지는 몰라도
아마도 공초 이상순 선생님과
엉뚱한 연관을 지어 본 것일 것이라
점심을 먹으러
베네딕도 수도원에 들어서는 순간
깊고 짧은 숨고름이 왔다
민주언론과 문학을 바로 세우기 위한 투쟁과
고통 중에 선생님의 인내는 믿음 하나로 깊은 내면의 시
꽃자리 힘이 아닐까?
안성 묘지에 들었다가
고우신 아내와 합묘 이장 한 왜관 창마 묘지엔
구름도 머무는 청명한 하늘 아래
그리움이 가득한 엎드림이 있었다
문학은 그런 힘으로
시는 그렇게 칠곡 가시나들이
요도 이뿌고 조도 이뿌다
인생 팔십 줄 사는 기 와이리 재민노
연애 누가 하라 카나
누가 시키 주나 지 맘대로 하는 기 연애지
사랑이라카이 부끄럽따
내 사랑도 모르고 사라따
절을때는 쪼매 사랑해조대
그래도 뽀뽀는 안 해밧다
시 벽은 살아 생동했고 동네어귀 삼겹집 고기는
살살 녹아 혀 끝에 시가 꿈꾸었으며
시마을 방앗간 참기름 고소함에 빠져
가슴에 끼고 귀갓길 버스에서 이리 구상 저리 구상하며
도착한 게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