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는 시간의 층위로 존재한다

by 신아르케

오르테가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인간은 단순히 생물학적 개체가 아니라, ‘자신의 시대’ 속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시대의 구조 안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간다. 그 말의 의미가 이제야 깊이 다가온다.

하나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는 많은 것을 공유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세대라는 층위 속에 위치한다. 상징적으로 20대, 40대, 60대는 한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지만, 그들이 속한 세계는 다르다. 문화적 기억, 사회적 리듬, 정서적 반응이 서로 엇갈린다. 외형적으로 공존하고 있지만, 내면의 세계는 서로를 비껴간다.

나의 20대는 지금의 나, 40대 중반의 나를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존재는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라는 장벽을 통과하고 부딪히며, 존재는 비로소 응축된 깊이에 이른다.
아무리 뛰어난 지성을 가졌더라도, 시간에서 오는 연륜을 단숨에 건너뛸 수는 없다.

물론 예외는 있다. 60대이지만 30대의 사고에 머문 이도 있고, 30대임에도 노년의 깊이를 지닌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인간은 자신이 살아낸 시대의 리듬 속에서 사고하고 반응하며, 그것이 세대를 가른다.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살아낸 방식의 문제다.

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바로 공유된 역사적 경험의 유무다. 나는 일제강점기, 6·25 전쟁, 군부 독재와 민주화 운동을 경험하지 않았다. 아무리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아도, 그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감수성과 통각을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다. 마찬가지로, 내 다음 세대는 88 올림픽, 2002 월드컵, 세월호 참사, 그리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과정을 살아본 적이 없다. 요즘의 10대는 스마트폰 이전의 세계를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시대를 살아간다.
이 모순적인 공존 속에서 나는 묻는다.
다른 세대를 향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우선, 지금 내 나이에서 오는 성숙이나 통찰을 자녀 세대에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제대로 바라보려면, 공평하게 ‘동일한 나이의 시기’로 되돌아가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그렇게 해보면, 나는 오히려 내 자녀들이 나보다 더 성숙하고 깊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문제는 인간의 인식이 본질적으로 현재 중심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데 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쌓아온 기준으로 다음 세대를 평가하고, 쉽게 실망하거나 비판한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철학적으로도 공정하지 않다. 마치 2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를 시간여행을 통해 찾아와 평가하는 것과 같다. 시간이라는 조건을 무시한 판단은 반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래 세대에게 너그러워야 한다.
그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시절에 그들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역시 젊은 날에는 위 세대로부터 충분히 기다림과 인내를 받아왔는지도 모른다.

한편, 지금의 부모 세대는 육신의 노쇠 속에서 죽음을 더 가까이 인식하며, 인생의 본질적 물음에 응답하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삶은 단순히 '지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를 껴안고 있는, 시간의 입체적 구조다.

세대 간의 상호작용 속에는 하나의 흥미로운 흐름이 있다.
아래 세대는 위 세대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그들과는 다르기를 원한다.
이것은 마치 유행의 순환과도 닮아 있다. 긴치마가 유행하면 짧은 치마가 그다음 유행을 이끌고, 다시 긴치마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사회의 규범과 가치도 순환한다. 비코의 순환론, 헤겔의 반작용의 법칙, 니체의 영원회귀까지 떠오른다. 새로운 세대는 언제나 이전 세대에 반기를 들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세운다.

MZ세대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예의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일반화가 공허하다고 생각한다. 한 세대 안에도 수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내 자녀들은 그렇게 단순화된 태도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지금의 문화가 조금 더 개인주의적이고 자기표현에 집중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다음 세대는 바로 그 ‘결핍’을 비판하며 새로운 예절과 공동체 의식을 되살릴 가능성도 있다.
역사는 반복되고, 세대는 돌고 돈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원이다.

결국, 한 시대를 구성하는 세 세대는 서로에 대해 관용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단순한 갈등이나 반작용의 반복을 넘어서, 이질성을 인식하면서도 창조적 융합을 지향해야 한다. 각 세대가 가진 고유한 통찰과 시선을 나누며,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시대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도리이며,
시간을 품은 존재로서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 할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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