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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자기-구속의 지혜

by 신아르케

인간에게 자유는 귀하다. 그러나 자유란 단순히 하고 싶은 대로 내키는 선택을 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어떤 자유는 오히려 나를 해치고 파괴로 이끌 수 있다. 마약을 할 자유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실제로 선택하는 것은 자유의 축복이 아니라 자유의 타락이다. 그러므로 참된 자유란 무제한적 방임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과 책임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생각실험을 떠올린다. 만일 어떤 행위가 내게 선한 결과를 확실히 가져온다면, 차라리 자유를 유보하고 반드시 그것을 하도록 스스로에게 명령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달리기가 그 예다. 나는 회복과 건강, 정신의 맑음을 위해 달리기를 나의 루틴으로 정했다. 그러나 주말이 되자 갈등이 찾아왔다. 쉬고 싶다는 유혹, 미디어 콘텐츠를 향한 충동이 고개를 들었다. 자유는 언제나 선택의 공간을 열어주지만, 그 선택의 무게는 때로 고통이 된다.

나는 이때 달리기를 ‘신성한 활동’이라 부르기로 했다. 신성한 활동이란 행위 후에 결코 죄책감을 남기지 않으며, 신체적·정신적·영적으로 나를 이롭게 하는 활동이다. 달리기와 글쓰기가 그러하다. 성경의 비유처럼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삶의 중심에 두고 지켜내듯,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이런 보화를 찾아내고 루틴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현명한 삶의 전략이다.

자유의지를 낭비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매번 갈등과 고민을 반복하는 것은 유혹과 자기 합리화의 틈을 넓힐 뿐이다. 차라리 “이 일은 반드시 한다”라고 내면의 명령을 세우면 오히려 마음은 자유로워진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자기-구속은 군대식 타율적 복종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선한 활동임을 확신했기에, 자발적으로 만든 규칙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의 노래 앞에서 스스로를 돛대에 묶었던 것처럼, 자기-구속은 자유를 지키기 위한 더 높은 차원의 결단이다.

물론 자기-구속은 맹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부상, 피로, 불가피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정기적 점검과 예외 규칙이 필요하다. 그러나 원칙은 분명하다. 선한 활동을 회피하려는 핑계와 게으름은 내 존재를 옭아매는 족쇄일 뿐이다.

나는 내 육신의 욕망과 게으름에 종노릇 하는 자유 없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내 의지와 판단으로 스스로를 규율하며, 삶을 창조해 가는 주체적 존재다. 그러므로 나는 스스로에게 선언한다. 선하고 신성한 활동에 대해서는 자유의 여지를 최소화하고, 기꺼이 나 자신에게 명령하리라. 이것이 자유의 성숙이며, 나의 삶을 한 단계 더 높이 끌어올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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