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생명 문학 공모전 출품작 1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었을까? 어린 시절 여름, 장대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나는 집 근처에서 한 마리의 작은 참새를 발견했다. 그 작은 생명은 어미와 떨어진 듯, 제대로 날지 못한 채 빗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장시간 비를 맞아 깃털의 방수력이 약해지고 체온이 떨어져 날갯짓을 할 힘이 사라진 상태였을 것이다. 더욱이 어린 새라 더욱 취약했을 터였다. 그러나 어린 나는 본능적으로 이대로 두면 이 작은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어머니께 간절히 부탁했다. “얘를 집에서 잠시 돌보면 안 될까요?” 다행히 어머니는 허락해 주셨다. 나는 작은 플라스틱 통에 횃대 비슷한 막대를 세우고, 쌀알을 먹이로 주었다.
곧 깃털은 말랐고, 모이를 먹으며, 귀엽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들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부드러운 깃털의 감촉과 작은 심장의 두근거림은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다. 아마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동물과 깊이 교감했던 경험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되자, 참새는 부쩍 자라 있었다. 내가 만든 작은 새장이 이제는 비좁아 보였다. 날개짓이 더 힘차졌고, 그 눈빛은 마치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은 욕망을 말하는 듯했다. 나는 느꼈다. 더 늦기 전에,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이 작은 새를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을.
그날, 나는 아파트 5층 베란다 문을 열었다. 두 손 위의 참새가 가볍게 몸을 떨었다. 밤공기에는 비가 그친 뒤의 흙내음이 묻어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고, 작은 날개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잠시 후, 참새가 다시 돌아와 내 주변을 맴돌다 내 곁에 앉았다. 헤어짐이 아쉬운 건 나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참새를 다시 두 손에 올리고 조심스레 말했다. “이제는 돌아오면 안 돼. 자유롭게 날아가야 해.” 그리고 한 번 더 어두운 하늘을 향해 날려 보냈다. 그날 이후, 참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 나는 치악산의 이름 유래를 들었다. 오래전 치악산 자락의 한 절에서 한 스님이 독사에게 쫓기던 꿩을 구해주었다. 꿩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스님의 품에 안겼고, 그 따뜻함 속에서 목숨을 건졌다. 며칠 뒤, 꿩은 은혜를 갚기 위해 다시 절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독사 앞에서 날개를 힘껏 퍼덕이며 맞섰지만, 결국 목숨을 잃었다. 스님과 마을 사람들은 그 꿩의 용기와 보은의 마음에 깊이 감동했고, 꿩 ‘치(雉)’ 자를 써서 산 이름을 치악산이라 불렀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놀랐다. 참새와 나, 꿩과 스님. 다른 시대, 다른 생명이지만, 서로를 살리고, 헤어지고, 그 마음을 잊지 않는 모습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두 이야기는 나에게 한 가지 진리를 새겨 주었다. 인간보다 지적·영적 수준이 낮다고 여겨지는 생명체라도, 모두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생명은 크기와 모양에 상관없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원주 출신 장일순 선생은 무위당 정신에서 “큰 것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이는 인위적 욕심을 버리고,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작은 생명과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삶에서 나온 정신이다. 작은 참새와 꿩의 이야기는 바로 이 정신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을 이용해야 하는 운명이지만, 동시에 그 생명과 교감하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작은 생명 하나라도 하찮게 여기지 않고, 그것과 나눈 교감을 가슴에 새기는 일. 그것이 참새와의 이별과 치악산의 전설이 내게 남긴 약속이며, 오늘도 내가 잊지 않으려 애쓰는 삶의 원칙이다.
큰 산이 품은 작은 날개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언젠가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