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생태 문학 공모전 출품작2
원주에 올 때마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인천에서 태어나 바닷바람 속에 살아온 내게, 바람은 늘 차갑고 매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계절 내내 불어오는 그 바람은 기분의 결을 흔들고, 생각의 물결을 뒤집어놓곤 했다. 바다는 장엄하지만, 늘 분주하고 변덕스럽다. 그래서인지 그 곁에서 살아온 나의 삶도 늘 긴장 속에 있었다. 그러나 능선을 넘어 원주로 들어서면, 공기가 달라진다. 바람은 산허리에 걸려 부드러워지고,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이마의 주름을 펴주듯 마음을 가만히 내려앉힌다.
원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동쪽의 치악산, 서쪽의 금대봉과 배후령 능선, 북쪽의 치악산 북쪽 능성과 횡성 방향 산지, 남쪽으로는 제천과 충주로 이어지는 구릉성 산지가 품처럼 감싸고 있다. 중앙에는 섬강과 원주천이 오랜 세월 바위를 깎고 흙을 쌓으며 빚어낸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 지형은 바람을 고요히 붙들어 두고, 공기를 차분히 가라앉힌다. 아마도 이런 차분함이 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고향이 아님에도 원주를 제2의 고향으로 삼은 이들이 많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 역시 남해의 통영을 떠나 원주에서 창작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세계에서 매력을 발견한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날 때, 뇌는 새로운 공기와 풍경에 반응하며 도파민을 흘려보낸다. 내가 원주에 매혹되는 것도, 바닷가에서는 결코 마실 수 없는 고요와 맑음을 이곳에서 맛보기 때문일 것이다. 산이 둘러싼 이 도시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생태학적으로도 소중한 공간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왔다. 자연은 그들에게 식재료와 약을 주었고, 또 위로와 지혜를 주었다.
치악산의 이름에는 생명을 향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옛날, 한 스님이 독사에게 쫓기던 꿩을 구해주었다. 꿩은 은혜를 갚으려 독사와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사람들은 그 넋을 기리기 위해 ‘치악(雉岳)’이라 불렀다. 그 안에는 희생과 보은, 생명을 향한 깊은 존중이 숨 쉬고 있다. 치악산 자락에는 구룡사, 상원사, 석남사 같은 고찰이 자리잡았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기도의 자리이자 영혼의 피난처였다. 전쟁과 질병, 압제와 고통 속에서 사람들은 이 산을 올랐다. 발 아래로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세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산허리를 감싸는 바람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이러한 영적 여정은 오늘날에도 반복된다. 과학이 발달한 시대지만, 우리는 여전히 알고 있다. 모든 생명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작은 생명 하나를 함부로 꺾으면 그 떨림이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이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인과의 법칙과 다르지 않다. 선한 행동은 선한 결실을, 어리석고 파괴적인 행동은 고통과 파멸을 낳는다.
원주의 선조들은 산과 강, 숲에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땔감과 약초, 사냥감과 나물, 모든 것은 자연의 품에서 왔다. 산업화 이전의 인간은 하루라도 자연을 떠나 살 수 없었다. 그러나 산업 사회에 들어서며, 우리는 생존의 뿌리를 잊었다. 분업과 기계 문명이 우리의 손과 발을 대신하면서, 자연의 상처에도 무감각해졌다.
16~17세기 유럽의 과학 혁명은 자연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던 오래된 관점을 무너뜨렸다. 데카르트와 뉴턴의 사상은 자연을 수학적 법칙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로 바꾸어 놓았고, 산업 혁명은 기계론적 유물론을 확산시켜 인간의 의식마저 물질 운동으로 환원시켰다. 그 결과, 자연은 정복과 이용의 대상이 되었고, 한국 역시 산업화 과정에서 이 세계관을 받아들였다. 인간과 자연의 거리는 멀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 거리를 좁혀야 한다. 자연은 여전히 하나의 유기체이며, 그 안에서 인간은 다른 생명들과 운명을 함께한다. 이 사실을 잊고 자연을 훼손한다면, 그 대가는 반드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원주에서 느끼는 고요함은 단순한 지형의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수백 년 동안 이 땅의 사람들과 산이 나눈 숨결, 생명을 향한 존중, 그리고 치악산이 품어온 영적인 힘이 스며든 결과다. 나는 그 고요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그리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되찾는 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