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은 나의 교만한 자아일 수 있다
혹시 삶이 유난히 힘들다고 느껴지는가.
인간관계가 버겁고, 사람들에게 자주 실망하며,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걸리는가. 타인의 기준 미달이 쉽게 눈에 띄고, 어느 순간부터 비판이 습관처럼 튀어나오는가. 그렇다면 문제는 반드시 세상이나 타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조심스럽지만, 그때 우리는 내 안의 교만을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작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마음이 상한다. 타인의 말과 행동이 나의 기대와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감정은 빠르게 분노로 기울고 이성은 날 선 비판으로 반응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부풀어진 자아는 늘 위태롭기 때문이다. 높아진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마음은 과도하게 예민해지고, 신경은 항상 곤두서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이 스스로를 필요 이상으로 대단한 존재로 평가할수록, 삶은 오히려 더 힘들어진다. 내가 타인보다 고귀한 존재라고 여기고, 지위가 높다고 느끼며, 특권층에 속해 있다고 생각할수록, 혹은 공부가 많고 지식이 깊으며 도덕적·영적으로 우월하다고 여길수록 마음은 결코 편안해질 수 없다. 그런 자아 상태를 지키기 위해서는 늘 방어해야 하고, 끊임없이 비교해야 하며, 작은 균열에도 과민하게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타인의 행동과 말은 더 이상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곧바로 나의 기준에 맞춰 재단되고, 나의 자존을 건드렸는지 아닌지로 평가된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감정은 요동치고, 이성은 자기중심적인 논리를 동원해 상대를 판단한다. 그렇게 내려진 판단들은 대부분 편파적이고 불공정하다. 결국 교만한 사람일수록 삶은 피곤해지고, 인간관계는 점점 더 소모적인 전장이 된다.
반대로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는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지 않기에, 타인의 말과 행동이 삶의 균형을 쉽게 무너뜨리지 않는다. 기대치가 낮아서가 아니라, 자아가 단단히 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기분 나쁠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상처가 아예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상처에 오래 붙잡히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가장 깊은 영적 상태도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고백한다. 이는 자아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자아가 더 이상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고백이다. 자아를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게 될 때, 인간은 놀랍도록 가벼워진다. 삶은 쉬워지고, 마음은 평온해지며,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진다.
삶이 힘들게 느껴질 때, 우리는 세상을 바꾸려 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혹시 내 마음이 너무 높아져 있지는 않은지, 혹시 지켜야 할 자아가 너무 커져서 나와 타인을 동시에 지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교만은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삶을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마음의 상태다. 반대로 겸손은 약함이 아니라, 삶을 가장 단단하고 평온하게 만드는 힘이다.
삶이 가벼워지는 길은 의외로 멀지 않다. 자아를 조금 내려놓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