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은 평생의 공부를 ‘경(敬)’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압축했다.
그의 사유는 흔히 성리학, 곧 이기론(理氣論)이라 불린다.
리(理)는 하늘의 이치요, 기(氣)는 그 이치를 따라 움직이는 생명의 에너지이다.
이 두 요소가 교차하는 자리가 바로 심(心), 즉 인간의 마음이다.
그러나 본성(性)에서 비롯된 선한 마음이 바른 모습으로 드러나지 못하면,
즉 이기심과 자기중심성, 탐욕과 분노가 마음을 흐리게 하면
인간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때 한 개인의 왜곡된 마음에서 비롯된 어그러짐은
가정과 사회, 나아가 세계로 번져 나가게 된다.
이황은 이러한 인간의 불안정한 마음을 바로 세우기 위해 경을 강조했다.
경은 마음을 집중하여 흐트러짐 없이 맑고 단정하게 유지하는 일이다.
그것은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이며,
우리 마음의 중심을 관통하는 기둥과 같다.
경이 흔들리면 마음이 무너지고,
마음이 무너지면 삶의 질서도 함께 무너진다.
결국 경은 마음을 다스리는 힘이자,
하늘의 질서에 인간의 마음을 조화시키려는 도덕적 태도이다.
퇴계에게 경은 단순한 심리적 주의나 집중의 기술이 아니라,
하늘의 이치(理)에 마음을 단정히 맞추려는 윤리적 실천의 방법이었다.
그는 경을 통해 인간이 하늘과 더불어 존재하는 법을 배우고자 했다.
따라서 “경 = 천인합일”이 아니라,
경은 천인합일에 이르기 위한 인간의 공부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최근 퇴계의 ‘경 철학’을 공부하며
그 가르침을 기도의 언어로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소서.”
무엇보다 내 마음이 바른 방향을 잃지 않게 하시고,
탐욕과 분노, 미움과 방종, 세속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평온하고 단정한 마음을 지니게 하소서.
그러나 나는 안다.
마음은 늘 예측할 수 없는 날씨와 같아서,
내 힘만으로는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임을.
그럴 때면 나는 간절히 기도한다.
“오늘도 하늘의 마음과 내 마음이 이어지게 하소서.
천인합일의 자리에 머물게 하소서.”
이러한 기도는 단순한 간청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실천적 수양의 과정, 곧 경의 공부이다.
내 의지로는 마음의 평정을 오래 유지하기 어렵지만,
기도의 행위는 나를 다시 경의 자리로 이끈다.
그럴 때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삶을 긍정하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신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완전한 기도이자,
경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경은 퇴계의 철학에서 출발했지만,
오늘의 나에게는 삶의 태도이자 정신의 형식으로 남는다.
하늘과 마음을 잇는 다리처럼,
경은 나를 매일 다시 세우고,
세상 속에서도 내면의 중심을 잃지 않게 한다.
오늘도 나는 그 다리 위를 걷는다.
흐트러짐 없이, 맑게, 단정하게.
하늘의 마음에 닿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