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공모작
나는 톨스토이의 문학과 사상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산문집은 지난 2년간 나의 사유와 삶의 습관을 바꿔놓은 책이다. 특히 365일 묵상집처럼 구성된 짧은 글귀들을 매일 성경의 잠언처럼 읽으며, 삶의 방향을 성찰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나에게 그의 사상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톨스토이의 정신은 성경적 가치관과 공명하며, 나의 신앙적 깊이를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나에게 이번 협성 독서왕 공모전의 도서 목록 중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었다. 이 작품은 한 인간이 죽음을 앞두고 자기 삶의 진실과 허위를 마주하는 이야기다. 줄거리만 보면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인물 설정과 전개 구조, 상징과 대비를 통해 톨스토이는 ‘죽음’을 매개로 깊은 철학적 통찰을 담아낸다. 그가 이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너무나 명확하고 강렬하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법관으로서의 출세와 체면, 사회적 성공을 인생의 최우선 가치로 삼으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남들이 보기에 좋은 삶’을 살았고, 그것이 곧 ‘옳은 삶’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사소한 부상으로 시작된 통증은 점점 악화되고, 결국 그는 불치병 진단을 받는다. 가족들은 그의 고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의사들은 그저 전문적 언어 뒤에 숨는다. 외면과 회피 속에서 이반은 깊은 고립과 공포를 겪는다.
그러한 절망 속에서 그는 마침내 깨닫는다. “내가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죽는 거야.”
이 말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자기기만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자 실존적 각성이다. 지금껏 살아온 삶은 남들의 기준에 순응해온 ‘가짜 인생’이었음을 통렬히 자각하는 순간이다. 이 깨달음은 장 폴 사르트르가 말한 ‘대타존재’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이반은 타인의 시선 속에 비친 자아를 진짜 자신이라고 믿으며 살아왔지만, 그것은 진정한 자기 자신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대자존재’—즉, 자기 선택과 책임 안에서 본질을 규명하는 존재—로 살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변화한다. 죽음을 거부하는 대신 수용하며,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내려놓고 가족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태도로 돌아선다. 그렇게 그는 죽음을 통과하며 해방을 경험한다. 삶과 죽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었고, 죽음은 오히려 삶을 되돌아보고 본질로 이끄는 통로였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인물은 하인 ‘게라심’이다. 그는 사회적 지위는 낮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반을 진심으로 돌보는 유일한 인물이다. 순박함과 진실함, 육체노동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톨스토이가 그의 산문집 곳곳에서 강조해온 가치와 일치한다. 게라심은 톨스토이의 인간관과 이상적 인격을 상징하며, 이반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결정적 영향을 준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철저히 ‘죽음’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그 죽음은 단순한 종말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허위를 벗겨내는 거울이며, 진실한 존재로 나아가게 하는 문이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육체는 소멸하지만 영혼은 영원을 향해 나아간다는 기독교적 관점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죽음을 통한 자기 해방, 사랑의 회복, 영원한 가치에의 접근을 하나의 영적 여정으로 제시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 역시 “죽음을 기억하라”는 내 인생의 좌우명을 다시 떠올렸다. 우리는 일상에서 걱정과 불안에 쉽게 휘둘린다. 그런데 그 걱정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대개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삶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실패할까 두려운 마음, 잃을까 봐 불안한 마음. 그러나 죽음을 곧장 응시하면 깨닫게 된다.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건강, 명예, 재산—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할 때 비로소 실존적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키에르케고르 역시 죽음을 망각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깊은 절망이라고 경고했다. 나는 이반 일리치를 통해 그 철학이 현실이 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죽음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기 전까지, 그는 진정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이 걱정은 죽음 앞에서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버려야 할 무게다. 나는 그 질문을 통해 본질적인 것에 더 집중하고, 비본질적인 것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결국 무엇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실존의 방식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삶과 죽음을 재구성하게 만든 철학적 고백서이자 영혼의 나침반이었다. 독후감을 쓰며 마지막으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이것이다.
“죽음이 눈앞에 있다고 상상하라. 그때에도 옳은 선택이라면, 지금도 그것은 옳은 것이다.”
이 강력한 자문은 앞으로 내 삶의 방향성과 선택의 중심에 계속 놓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매 순간, 사라지는 것들보다 죽음 앞에서도 남을 수 있는 가치를 따라 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