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의 길을 걷는 행복-공모작
우리는 흔히 인생을 평가할 때, 빠른 성공과 눈에 띄는 재능을 선망의 대상으로 여긴다. 많은 이들은 재벌 2세, 천재 예술가, 전교 1등 같은 상징적 인물에 자신을 대입하며 살아간다. 이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과 감정에서 비롯된, 다소 1차원적인 인생관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대기만성, 자수성가, 평범함은 마치 패배자의 조건처럼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시선에 의문을 품는다. 과연 인간의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빠른 성공과 뛰어난 재능이 항상 유리한 조건일까? 아니면, 느리지만 성실한 걸음, 스스로의 힘으로 축적된 성취가 더 큰 기쁨을 선사하는 것일까?
철학자 파스칼은 『팡세』에서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 다만 그것을 추구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행복은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적"이라 보며, 그것은 탁월한 덕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삶 속에서 실현된다고 보았다. 이들이 말하는 행복은 단순히 어떤 상태를 '얻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태에 '존재하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행복은 쾌락이나 물질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생기는 것"이라 했다. 윌리엄 제임스는 "의미 있는 목표를 향해 의지적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행복은 소유나 성취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을 살아가는 가운데 경험되는 내적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생물학적 원리가 작동한다. 인간은 강한 쾌락 자극에 노출되면 곧 그것에 익숙해진다. 이는 뇌가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생존 메커니즘 때문이다. 도파민이 반복적으로 분비되면 뇌의 수용체는 점점 둔감해지고, 같은 자극으로는 더 이상 쾌락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이는 생존을 위한 전략이었다. 만약 한 번의 성취로 오래도록 만족한다면, 인간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어 생존에 불리했을 것이다.
결국 인간은 본질적으로 '끊임없이 뭔가를 추구하고자 하는 존재'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행복은 어떤 절정의 순간을 소유함으로써 영원히 유지되는 상태가 아니라, 의미 있는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지속적 운동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대기만성, 자수성가, 평범함은 단점이 아니라 축복이다. 조기에 모든 것을 얻은 이들은 더 이상 올라갈 계단이 없고, 더 큰 쾌락을 위한 자극을 찾기 어려워진다. 반면 천천히 쌓아 올린 사람은 성취가 쌓일수록 더 큰 만족과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고급 자동차를 처음부터 타는 사람은 다음 단계가 없지만, 차근차근 자신의 노력으로 단계를 밟아가는 사람은 매 단계마다 기쁨을 더욱 깊게 경험할 수 있다.
나의 군대 경험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병일 때는 거의 모든 자유가 제한되어 있었지만, 상병과 병장이 되면서 점차 자유가 주어졌다. 이러한 절제 속의 상승 구조는 처음엔 불합리하게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작은 것에 감사하게 되었고,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행복을 경험할 수 있었다. 절제는 쾌락의 문턱을 낮추고, 그로 인해 더 작은 것에도 만족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
또한, 예술가가 최고의 경지에 일찍 도달하면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괴로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반면 평범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 오랜 시간 꾸준히 정진하며 경지에 도달하는 과정에서는 각 단계마다 깊은 성취감이 동반된다. 이 성취감의 축적이야말로 삶의 에너지이며, 행복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부모의 유산을 통해 부를 상속받은 경우도 유사하다. 외형적으로는 풍요로울 수 있으나, 실존적 측면에서는 자기 손으로 이루어낸 것이 없기에 자부심이나 주체성을 갖기 어렵다. 결국 그런 삶은 부모의 기대에 종속된 수동적 삶이 될 가능성이 크며, 주변의 인정을 받는다 해도 내면에서는 공허함을 느끼기 쉽다.
따라서 나는 확신한다. 자수성가, 대기만성, 보통의 재능은 단순히 감내해야 할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 더 유리한 축복이다. 느리게,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 차곡차곡 삶을 쌓아가는 방식은 삶을 더 실존적이고 주체적으로 만들며, 그 과정 속에서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경험하게 한다.
이제 나는 평범하고 성실한 나의 삶을 더 이상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 담긴 가능성과 의미를 더 깊이 인식하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의 존재를 완성해가고자 한다. 대기만성의 길은 때로는 외롭고 느릴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내가 직접 얻은 기쁨과 주체적인 삶이 응축되어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