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질적으로 만족을 모르는 존재다.
언제나 어제의 자신을 넘어서는 욕구가 깨어 있다.
그 대상이 재정적이든, 신체적이든, 지적·도덕적·영적이든 차이는 없다.
모든 영역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더 높은 곳을 향한다.
칸트가 말했듯, 인간의 이성은 본성적으로 통일성과 완전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시공간과 인과의 사슬, 그리고 육체적·인지적 한계 안에 갇힌 유한한 존재다.
그런 우리에게 완전성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理想)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가능성은 우리의 욕망을 꺼뜨리지 않는다.
인간은 무엇을 이루어도 금세 만족하지 못한다.
성취의 기쁨은 잠시뿐이며, 곧 더 큰 목표를 세우고 자신을 다시 채찍질한다.
그렇기에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 있다는 말은 옳다.
도달의 순간보다, 그 길을 걷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성장과 의미를 경험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욕구의 방향이다.
부(富)나 명예, 권력의 추구에만 몰두하면,
만족은 숫자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측정되는 공허한 환상으로 변한다.
한계를 넘을수록 기준은 높아지고, 욕망은 더 커지며,
결국 우리는 끝없는 불만족의 순환 속으로 자신을 내던진다.
반면, 그 에너지를 수양의 방향으로 전환할 때,
즉 지(智)·덕(德)·체(體)의 조화를 이루려는 자기 단련,
혹은 도덕적·영적 완성을 향한 꾸준한 정진으로 나아갈 때,
그 욕망은 더 이상 해로운 불꽃이 아니라 의미의 불씨가 된다.
완전은 불가능하지만, 품격 있는 과정은 가능하다.
문명사적 시야로 보아도 사정은 같다.
인류는 물질을 다루는 기술에서는 놀라운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윤리적, 도덕적, 영적 성숙의 차원에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자기중심성과 탐욕, 거짓과 폭력이 세상을 물들이고,
인류는 마치 다람쥐 쳇바퀴 속에서 도는 듯한 삶을 반복한다.
진보는 이루었으나, 방향은 잃은 상태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이 불완전한 본성을 절망의 근거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생존하게 하고, 문명을 이루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추진력을 정신의 성장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과학이 만든 세계를, 윤리와 사랑이 살 만한 세계로 바꾸는 일이다.
인간은 완전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더 나은 방향으로는 나아갈 수 있다.
만족을 모르는 마음을 부정하지 말고,
그 에너지를 수련과 덕, 연대와 자비의 길로 돌려야 한다.
우리가 반복해 선택하는 방향이 곧 우리의 존재를 만든다.
완전은 불가능하지만, 성장은 가능하다.
그 가능성에 우리의 만족을 걸 때,
비로소 인간은 불완전 속에서도 존엄한 존재로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