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악을 피하는 지혜

by 신아르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인간의 본성이란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두 성향을 섞어 지니고 있으며, 그 비율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니 “이 사람은 선하다”, “저 사람은 악하다”라고 단정하는 정의를 세우는 것은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유의미한 기준 하나를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는가, 아니면 쉽게 넘는가’이다.

사람마다 마음속에는 옳고 그름에 대한 신념이 있다. 그것이 신앙에서 오든, 타고난 도덕 감각에서 오든, 혹은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가치관에서 오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서 절대로 넘지 않으려는 선이 존재하느냐는 점이다. 진실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 선이 더욱 명확해지곤 한다. 신이 보고 계시다는 경외심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의 믿음을 저버리는 것을 곧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일로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대로, 명확한 기준이 없는 사람은 위험하다.
상황과 감정, 자신의 편의에 따라 언제든 선택을 바꾸기 때문이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없으니, 그에게는 모든 선택이 가능해진다. 결과적으로는 악한 선택도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은 작은 쓰레기 하나도 땅에 버리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도,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쓰레기나 담배꽁초, 심지어 침까지 거리낌 없이 버린다. 이 차이는 단순한 행동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 안에 ‘넘지 말아야 할 기준선’이 존재하는지의 문제다.

학창 시절에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규칙을 존중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지 않으려 애쓰던 학생들은 대체로 성인이 되어서도 책임 있는 어른이 된다. 반면, 어릴 때부터 담배를 피우고, 욕설을 하고, 절도를 일삼는 학생들은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이 흐릿해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어른이 되어서도 반복되기 쉽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맡은 일을 정직하게 해내려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필요할 때마다 거짓말을 하고, 아무도 보지 않으면 무책임하게 행동한다. 그 작은 순간들에서 드러나는 기준의 유무는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나는 이런 작은 기준이 없는 사람들이 악한 선택을 할 위험이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언제든 감정이나 욕망이 이끄는 방향으로 미끄러질 가능성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조언하고 싶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 넘지 않는 선을 보라고.
누구와 있을 때도 동일하게 예의를 지키는가?
분노했다고 해서 넘어서는 안 될 말이나 행동을 넘지 않는가?
특히 부부 관계에서 분노를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막말을 내뱉는 사람은 이미 기준선을 무너뜨린 상태다. 그리고 한 번 무너진 관계는 되돌리기 어렵다.

악은 거대한 죄악의 형태로만 찾아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작은 선을 넘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누구도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한 번 선을 넘기 시작하면, 마음속의 기준은 점점 희미해지고, 결국 큰 악을 선택하기 쉬워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이 되지 않기 위해
작은 선이라도 넘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이 작은 기준들이 우리의 성품을 만들고, 성품은 결국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선을 지키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안의 악을 경계하는 사람이다.
악을 피하는 지혜는 거창한 노력에 있지 않다.
작고 일상적인 ‘선 너머의 순간’에서 멈출 줄 아는 것,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