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방식 앞에서, 교사는 배운다

by 신아르케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나는 최근 하나의 껍질을 벗겨 내는 경험을 했다. 누군가에게 배운 지식이 아니라, 수업 현장에서 마주한 한 학생을 통해 얻게 된 깨달음이었다.

나는 문법을 가르친 뒤 반드시 암기 검사를 한다. 설명한 내용을 얼마나 정확히 숙지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라 믿었고, 그것이 교사의 책임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유독 힘들어하는 학생이 있었다. 질문을 던지면 말이 막히고, 대답은 더디거나 엉뚱해 보였다. 암기 검사를 하는 나도, 대답하지 못하는 학생도 점점 지쳐 갔다.

나는 속으로 판단했다. 이 학생은 암기력이 떨어진다고. 누구나 타고난 지능과 능력이 다르니 어쩔 수 없다고, 그것은 학생의 잘못도 교사의 잘못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 이상은 한계라고 여겼다.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그 학생은 영어 시험을 생각보다 잘 치렀다. 시험 직후 첫 수업을 하던 날, 불현듯 내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있었다. 혹시 내가 확인하고 있는 것이 학생의 이해가 아니라, 교사의 방식에 대한 순응은 아닐까.

그날 나는 방식을 바꾸었다. 선생님 기준으로 암기한 내용을 그대로 말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네가 외운 방식대로,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말해 봐.” 그 순간 수업의 공기가 달라졌다. 학생은 느리지만 차분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식을 하나씩 세워 말하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훨씬 더 잘 기억했고, 더 정확하게 설명했다. 나는 솔직히 놀랐다. 그리고 동시에 많은 것을 사유하게 되었다.

나는 다시 깨달았다. 학생마다 지성과 이성을 사용하는 방식은 정말로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이 학생은 머리로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것을 즉각 말로 꺼내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유형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학생들은 학교나 학원 같은 기존의 교육 시스템 안에서 학습 능력이 낮은 학생으로 오해받기 쉽다. 자신이 아는 것을 말로 즉시 표현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나의 교육 방식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지식을 구성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방식은 철저히 교사 중심이었다. 그 기준에 학생들을 강제로 맞추는 것은 옳지도 않고, 교육적으로도 효과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쓸데없는 감정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들고, 교육 과정을 지치고 부정적인 경험으로 바꿔 놓았다.

반대로, 학생의 고유한 지성을 존중하고 그 방식에 맞추어 지식을 형성하도록 돕고, 그 방식 그대로 확인해 주는 교사가 될 때, 교육의 과정과 결과는 놀라울 만큼 아름다워진다. 학생에게 자연스러운 방식은 대개 가장 효율적인 학습 방식이다. 교사는 더 수월해지고, 학생은 자신감을 얻으며, 관계는 좋아진다. 그 과정 속에서 학생은 더 깊은 성취감을 느낀다.

물론 교사의 질문 방식에 즉각 반응하고, 교사가 원하는 형태로 정확히 대답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런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내적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나 교사 기준으로 좋은 수행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 학생을 문제 있는 학생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때로 그것은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그만큼 개성이 강하고 독창적인 사고 방식을 지녔다는 신호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어린 시절 기존 교육 체계 안에서 평범하거나 다소 엇나간 학생으로 보였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교육이 학생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가. 학생의 가능성인가, 아니면 교사의 편의인가.

이 깨달음 이후로,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은 전반적으로 더 수월하고 즐거워졌다. 학생과의 관계도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나는 교사로서 무엇을 더 가르쳤다기보다, 무엇을 내려놓았다는 감각에 가깝다. 아마도 교육이란, 학생을 내 기준에 맞추는 일이 아니라 내 기준을 학생 앞에서 잠시 내려놓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