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어떤 날은 타인의 말과 행동이 평소보다 날카롭게 다가온다.
평소라면 별 의미 없이 흘려보냈을 말 한마디, 시선 하나가 그날따라 마음에 걸리고, 감정적으로 과하게 반응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 날이 찾아오면,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려 한다. 문제는 타인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물론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고 싶을 때도 있다. 실제로 상대의 말이나 태도가 무례했을 수도 있고, 불필요한 자극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다. 그 사람이 오늘만 특별히 달라진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 사람의 말투와 행동 방식, 정서는 하루아침에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평소와 같은 자극이 오늘따라 유난히 거슬렸다면, 그 이유는 내 안에서 찾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대개 그런 날은 몸이 약해져 있거나, 수면이 부족하거나,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져 있을 때다. 마음의 예민함은 종종 생리적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타인을 비난하며 감정을 소모하는 대신, 내 삶의 리듬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책임을 나에게로 가져오는 일은 괴로운 자기비난이 아니라, 다시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타인의 말과 행동이 언제나 중요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거나, 육체적·정신적 상처를 입히거나, 법과 윤리를 명백히 위반한 경우라면 당연히 문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상적 자극은 그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사람의 존재 방식이자 선택의 자유에 가깝다. 그리고 그러한 자극은, 본질적으로 나의 자존감이나 정체성을 훼손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타인의 시선과 말에 지나치게 흔들리고 있다면, 그것은 그 말이 강해서라기보다, 지금 내 마음의 바닥이 약해졌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종종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신에 찬 판단을 내리지만, 사실 그 판단의 상당 부분은 내 머릿속에서 써 내려간 소설에 불과하다. 같은 상황에서도 자존감이 단단한 사람은 호의로 해석하고, 지쳐 있는 사람은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누군가의 시선을 두고 한 사람은 관심이라 여기고, 다른 사람은 경멸이라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았는지는 직접 묻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피곤하고 예민할수록 최악의 해석을 먼저 선택한다. 더 나아가, 같은 공간에 있는 타인의 불안정한 정서가 나에게 전이되기도 한다. 감정이 정돈되지 않은 사람의 말과 행동은 공기처럼 퍼져, 나 역시 불안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그런 순간일수록 호흡을 의식적으로 고르고, 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훈련이 필요하다. 부드러움을 잃지 않으려는 작은 노력이 나를 지켜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타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잘 다스리는 일이다. 내가 휘둘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문제 될 것은 거의 없다. 그 순간 심각하게 느껴지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거나, 몸 상태가 회복된 뒤 다시 바라보면 대개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수렴된다. 우리가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했을 뿐이다.
잠시 찾아오는 생리적 불균형과 그로 인한 불편함에 너무 큰 의미를 실을 필요는 없다. 타인의 눈과 판단에 과도하게 신경 쓸 이유도 없다. 내가 나 자신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는 없다. 마음이 흐트러지는 날도, 쉽게 중심을 잡지 못하는 날도 있는 법이다.
중요한 덕목은 완벽한 평정이 아니라, 다시 균형을 향해 가려는 태도다. 그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오늘 조금 흔들렸다고 해서 삶 전체가 무너지는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