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연민과 공감, 긍휼과 관용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은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을 평가하고, 너무 빠르게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조금만 삶을 오래 살아보면 깨닫게 된다. 인간은 단순히 선하거나 악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선과 악이 뒤섞인 존재이며, 다만 어떤 면이 더 자주 드러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성숙해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가까이서 오래 지내다 보면 반드시 결이 거친 부분이 드러난다. 완벽해 보이던 인물도 일상의 공간에서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온다.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타락이 아니라 본래의 모습에 가깝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멀리서 어떻게 보이는가보다 가까운 관계 속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말과 이미지로 만들어진 평판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태도 말이다.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는 그 사람의 숨길 수 없는 성향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인간의 성품은 언제나 양면을 지닌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은 동시에 시끄럽고 지나치게 개입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말이 많은 사람은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경솔하고 실속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어떤 관점으로 사람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가이다. 타인의 단점을 발견하는 데 익숙한 사람은 늘 날이 서 있다. 그 눈으로 세상을 보면, 어디를 가든 불편함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판과 분노, 원망은 생각보다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결국 가장 피곤해지는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물론 모든 것을 덮어주고 무조건 용인하는 태도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한 잘못 앞에서는 조언과 충고가 필요하고,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목소리를 내야 할 순간이 있다. 관계에는 늘 균형이 요구된다. 그래서 인생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평안과 복지를 위해서라도 한 가지 선택은 분명하다. 타인이 공동체를 해치지 않는 한,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가능한 한 그의 장점을 먼저 바라보려는 훈련이 필요하다. 단점이 떠올랐다면, 의도적으로 장점을 하나 더 떠올려 보는 연습. 그것만으로도 마음은 훨씬 덜 거칠어진다.
만약 내가 어떤 잘못 하나로만 평가받는다면, 그것이 과연 정의로울까. 잘한 것과 애쓴 것, 견뎌온 시간들은 모두 지워진 채 단점만으로 규정된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충고를 해야 할 때조차도, 단점만 말하지 않으려 애쓴다. 장점과 함께 말할 때, 비로소 그 말은 사람을 세우는 말이 된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은 결국 나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관용은 상대를 위한 미덕이기 이전에, 나 자신을 지치지 않게 하는 지혜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며 살아갈지 선택하는 순간, 그 선택은 고스란히 내 삶의 온도로 돌아온다. 나는 오늘도 연민의 눈을 선택하려 애쓴다. 그것이 타인을 살리는 길이자, 나를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