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서 내가 선택해야 할 주파수

by 신아르케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낯선 이들과 스쳐 지나가고, 그중 일부와는 삶 속에서 점점 더 깊은 인연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가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만남은 결국 스쳐가는 인연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인연은 각자의 자리에서 소중하다. 지구상에 이미 80억이 넘는 인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내가 평생 직접 마주하고 관계를 맺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사실만으로도, 한 번의 만남이 지니는 무게는 가볍지 않다.

오늘 내가 고찰해 보고 싶은 것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정서적 결’에 관한 문제다. 삶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대체로 두 가지 흐름이 느껴진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정서가 차분하고, 삶이 정돈되어 있으며, 존재 자체가 고요하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자연스레 가라앉고, 내 호흡과 생각도 안정된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말투와 표정, 태도 속에 불안과 긴장이 묻어난다. 가까이 있으면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생기고, 나도 모르게 호흡을 의식적으로 조절하며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이 현상을 생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호흡의 리듬, 심박의 속도, 긴장 상태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등은 쉽게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정서가 흔들리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 머물며 상호작용하는 일은, 내 몸의 항상성을 깨뜨리는 경험이 되기 쉽다. 그래서 그러한 만남은 즐거움보다는 피로와 불편함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매우 민감한 생물이다. 얼굴 표정, 목소리의 떨림, 제스처, 말의 속도와 톤 같은 미묘한 단서들만으로도 정서와 감정은 쉽게 전달된다. 감정과 태도는 생각보다 빠르게 전염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피하려 한다. 균형이 깨진 상태는 누구에게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서가 불안정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인간관계 속에서 거리감을 경험하기 쉽다. 이것은 누군가를 탓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관계라는 구조가 지닌 자연스러운 속성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정죄하거나 평가할 이유는 없다. 다만, 현실에서 그렇게 작동할 뿐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시선을 바꿔 보고자 한다. 내가 삶에서 적용하고 싶은 태도는, 정서가 흔들리는 사람에게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정서가 안정되어 있고 마음이 평안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관계보다, 나에게 기쁨과 평온을 주는 사람들을 더 자주 기억하고, 더 오래 마음에 두는 선택 말이다.

정서와 감정, 태도가 전염되는 것이라면, 나의 복지를 위해서라도 나는 긍정적인 주파수에 맞추는 편이 지혜롭다. 불안에 동조하여 함께 흔들리는 것보다, 평온에 머물며 나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편이 결국 더 많은 선을 낳는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차분함을 잃지 않을 때, 정서가 불안한 사람에게도 오히려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평온 역시 전염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많은 청중 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찬양을 하거나, 집중이 필요한 상황에 놓였을 때 나는 의식적으로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얼굴들, 긍정적인 에너지를 건네는 사람들의 그룹에 시선을 둔다.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가 아니라, 나의 중심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말과 태도로 불편함을 유발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관계 속에서 거리가 생기기 쉽다. 이는 인간관계에서 너무나 흔하게 나타나는 결과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을 정죄할 필요도, 마음을 소모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만약 마음을 쓴다면, 그것은 비난이 아니라 긍휼과 자비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오늘의 나는 어떤 주파수를 내보내고 있는가. 누군가에게 평온한 존재로 남고 있는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으로 다가가고 있는가. 관계를 바꾸기 전에, 세상을 탓하기 전에, 이 질문 앞에 잠시 멈춰 서는 것이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드는 길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