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삶을 예측하며 살아왔다. 작은 단서만으로도 사람의 성향과 심리를 짐작하고, 선택의 결말을 미리 그려본 뒤 행동의 반경을 줄이는 방식이 더 안전하고 현명한 삶의 전략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이런 태도는 나를 여러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었고, 적지 않은 경우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방식이 가진 치명적인 한계를 보게 되었다. 아무리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 해도, 결국 나는 세상을 나의 경험과 직관이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다. 인과관계에 근거한 판단이라 해도 그것은 언제나 과거의 데이터에 기댄 추론일 뿐이며, 잘못된 판단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더구나 직관은 익숙함을 선호한다. 그래서 선택은 점점 안전한 쪽으로만 강화되고, 삶은 서서히 단조로워진다.
이러한 태도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반복된다. 늘 먹던 메뉴만 고르듯 선택하고, 늘 만나던 사람만 만나며, 늘 다니던 길로만 움직인다. 큰 실패는 없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풍미와 설렘, 예기치 않은 배움의 기회 역시 함께 사라진다. 십 년을 알고 지낸 사람에게서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워지고, 삶은 점점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의 반복이 된다.
그래서 요즘 나는 마음의 태도를 훈련하고 있다. 가능한 한 판단을 늦추고, 내 생각과 반대의 가능성도 항상 열어두려 한다. 무엇보다 아무 선택도 하지 않기보다는, 선택하고 실패하며 배우는 길을 택하고자 한다. 선택에는 언제나 기회비용과 위험이 따르지만, 무선택이야말로 가장 많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결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무모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뜨거운 불을 무작정 만져보거나, 삶을 파괴하는 선택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혜 없는 극단은 언제나 위험하다. 다만 안전장치가 있는 범위 안에서, 실패를 감수할 수 있는 선택을 통해 삶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것이다.
인생은 유한하고 짧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안전했는가보다, 얼마나 풍요롭게 살아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예측은 나를 지켜주었지만, 선택은 나를 자라게 한다. 이제 나는 결과를 미리 재단하기보다, 일단 선택하고 그 안에서 배우는 삶을 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