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내면에는 하나의 문장이 반복해서 울린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자.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 가운데 진정으로 당연한 것은 거의 없다.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것들, 붙잡았다고 느끼는 상태들조차 잠시 머물다 사라질 가능성을 언제나 안고 있다. 영원히 유지될 것처럼 보이는 안정과 만족 역시 예외는 아니다. 삶에는 본래부터 ‘계속될 권리’를 가진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요즘,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의도적으로 그 시간을 붙잡아 보려 한다. 만족과 감사가 마음에 스며드는 찰나를 흘려보내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려 애쓴다. 지금 내 손에 있는 것들이 언제까지나 내 곁에 머물 것이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이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순간들 속에서도 감사할 이유가 의외로 많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몸이 건강하고 특별한 통증 없이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그 사실 자체가 감사의 이유가 된다. 두 다리로 마음껏 걷고 뛰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너무 익숙해서 잊기 쉽지만, 한 번의 사고나 질병으로 영영 불가능해질 수도 있는 상태다. 지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책을 읽을 때 집중이 잘 되고, 문장이 또렷이 이해되는 순간도 그렇다. 피로가 몰려오거나 컨디션이 무너지는 저녁이 되면, 방금 전의 명료함이 계속 유지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해력과 집중력 역시 언제든 흐려질 수 있는 상태다. 그렇기에 지금의 또렷함은 누려야 할 선물에 가깝다.
이 논리를 조금 더 확장해 보면, 삶의 거의 모든 것이 감사의 대상이 된다. 생명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사실, 감각과 이성이 있어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하며 향유할 수 있다는 사실, 단순히 살아 있음이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다. 이 정도만으로도 매 순간은 감사와 감탄으로 채워져도 부족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주 이 충만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채 하루를 흘려보낸다. 익숙함이 감사를 덮어버리고, 당연함이 경이로움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한계이자 부족함이다.
그래서 이 글을 하나의 다짐으로 남긴다.
당연함을 조금씩 내려놓고,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지금 이 순간을 더 충만하게 살아가기로. 오늘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잠시 빌려 쓰고 있다는 마음으로, 감사의 밀도를 높이며 살아가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