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떤 글이 정말로 '좋은 글'일까? 이 질문은 단지 문학적 기교나 수사적 화려함에 대한 탐색이 아니다. 나에게 좋은 글이란, 삶에 대한 깊은 철학적 고찰이 담겨 있고, 그 고찰을 통해 얻어진 통찰이 구체적인 현실의 지혜로 변환되어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글은 실질적인 삶의 유익을 가져다주는 실천 가능한 진리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나의 존재가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성숙해지고, 삶이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 유복해지며, 육체적ㆍ정신적ㆍ영적 차원에서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면 그 글은 분명 좋은 글이다. 반대로, 아무리 문장이 정교하고 단어가 세련되었더라도 나의 삶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한다면, 그 글은 내게 있어 좋은 글이라 부를 수 없다.
좋은 글의 또 다른 기준은 반복해서 읽고 싶은가의 여부이다. 나는 내가 쓴 글을 시간이 지난 뒤에도 다시 읽고 싶어 지는가를 자문한다. 진리는 단번에 내면화되지 않는다. 마치 영어 단어를 암기하듯이, 진리도 반복적인 기억과 숙달을 통해 삶에 새겨져야 한다. 한 번의 깨달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 깨달음이 나의 영혼에 각인되고, 실제의 삶에서 즉각적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반복적이고 의식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글은 결국 삶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 글을 통해 드러난 사유가 삶의 구체적인 장면에서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허한 이론이거나 듣기 좋은 문장들의 나열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일종의 실존적 훈련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나의 삶에 붙잡아두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러한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나는 내 삶의 '좋은 관찰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 속에서 신이 나에게 건네는 작은 계시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의를 집중하고 기록한다. 왜냐하면, 중요한 통찰은 종종 소리 없이 다가왔다가 쉽게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손실 회피 성향을 떠올리며, 나는 깨달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이러한 태도에서 글쓰기는 나에게 가장 고차원적인 영적ㆍ지적 행위가 된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내면의 혼란과 외부의 소음에서 벗어나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 다다를 수 있다. 글쓰기는 명상이며, 고백이며, 기도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간다. 책을 읽기 전에, 운동을 하기 전에, 글을 쓴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그 어떤 배움보다도 깊고, 나를 나답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글쓰기의 힘은 나에게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나는 자녀에게도 글쓰기를 권한다. 정서적 안정, 비판적 사고력, 영적 성장을 위한 최고의 훈련은 글쓰기다. 삶의 혼란스러운 장면들 앞에서 글을 써내려 가는 과정은, 스스로를 치유하고 정돈하는 과정이 된다.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은 평생 쓰고 싶은 글, 그리고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글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라 믿는다.
결국, 좋은 글이란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하고, 나의 삶을 정돈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지혜와 평안을 나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을 관찰하고, 기도하고, 고요히 사유한다. 그리고 겸손한 도구로서, 신의 펜이 되기를 소망하며, 한 문장씩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