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언어, 나의 존재 — 원어민 영어를 넘어서

by 신아르케

우리는 외국어를 배울 때 흔히 ‘원어민처럼 말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완벽한 발음, 자연스러운 표현, 일상적 감각까지 모방하려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목표에 내심 불편함을 느껴왔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로 사고하며, 내 삶의 리듬은 한국적인 감각 위에 형성되어 있다. 그런 내가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을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타자와 연결하려는 깊은 실존적 시도였다. 나는 원어민을 흉내 내기보다, 나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를 만들고 싶다.


내가 영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방식은 매우 한국적이다. 문법과 어휘를 먼저 익히고, 구조를 통해 글을 쓰며, 사고는 철저히 모국어의 문법적 뼈대에 기대고 있다. 그래서 나의 영어는 언제나 한국어에 기반한 사고 구조 위에서 태어난다. 그것은 때때로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고, 원어민의 감각과는 멀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표현은 모방이 아닌 창조이며, 내 삶과 감정, 철학이 반영된 나만의 언어적 실천이다. 나의 영어는 ‘비표준’ 일 수 있지만, 나의 사고와 존재의 결을 고스란히 품은 살아 있는 언어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다. 언어는 세계를 구성하는 틀이며, 자아를 표현하는 방식이며, 타자와 관계 맺는 다리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고,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경계를 넘어, 한국어로 사유한 나의 세계를 영어라는 또 하나의 언어로 확장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영어는 남의 것이 아니라 나만의 리듬과 시선이 담긴 내 세계의 언어여야 한다. 나는 남의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보다, 내 감각과 감정이 살아 있는 언어를 만들고자 한다. 그것이 나에게 ‘영어를 말한다’는 행위의 진짜 의미다.


언어는 결국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그 관계는 단지 원활한 교환이나 표준화된 표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관계란,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타자에게 말을 거는 행위이고, 거기에는 늘 낯섦과 어긋남, 그러나 동시에 이해와 창조의 가능성이 공존한다. 나는 그 가능성에 기대어 영어를 말한다. 나의 문장은 익숙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나만의 질문, 감정, 고민이 있다. 그것은 ‘자연스럽지 않을지언정’, ‘살아 있는 말’이며, 단지 배우는 언어가 아닌, 나의 존재가 반영된 언어다.


나는 영어를 흉내 내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표현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 그것은 나의 한국적인 정체성과 삶의 리듬이 스며든 언어이고, 타자와 관계를 맺기 위해 내가 만든 다리다. 원어민처럼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내 언어로, 나의 방식으로, 나의 세계를 말하고 싶다.


유창함보다 의미 있는 말, 표준 영어보다 살아 있는 나의 영어.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언어의 길이며, 내가 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