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게, 인간답게

시행착오 속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by 신아르케

우리는 왜 늘 ‘완벽하게’ 시작하려 할까?
어떤 일을 앞두고, 우리는 정리된 계획과 준비된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도전할 자격이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런 완벽주의는 오히려 우리를 멈추게 한다. 완벽한 출발을 요구하는 순간, 인간은 기계가 되기를 강요당한다. 하지만 우리는 컴퓨터가 아니다.

컴퓨터는 정해진 입력에 따라 정확한 출력을 내는 기계다. 인간은 다르다. 우리의 삶은 시행착오와 기억, 감정과 감각, 그리고 시간이라는 연속성 속에서 구성된다. 완벽하지 않음은 인간됨의 조건이다. 처음의 한두 번의 시도는 대체로 서툴고 어설프다. 그러나 바로 그 서툰 움직임 속에서 과거의 기억, 오래된 감각, 축적된 경험들이 되살아난다. 시행착오란 단지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과거로부터 배워온 모든 것을 다시 부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인지심리학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예컨대 절차 기억(procedural memory)은 오랫동안 훈련된 기술이나 습관이 반복과 실수를 통해 되살아나는 뇌의 작동 방식이다. 스키마 이론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일을 접할 때조차 과거의 틀과 경험을 활용해 적응해 나간다. 결국 ‘새로운 일’이라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인지의 작동 방식은 베르그송의 생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인간 정신이 기계적이고 정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과 맥락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라고 보았다. 그래서 인간의 실천은 늘 예측 불가능하고 유연하며, 반복 속에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간다.

완벽주의는 이런 흐름을 방해한다. 너무 높은 기준을 세우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인간은 자기 효능감을 잃고 위축된다. 이는 캐럴 드웩(Carol Dweck)이 강조한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드웩은 실패와 시행착오야말로 진정한 학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완벽한 성취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다는 것은, 학습하지 않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또한, 인간의 기억은 상황적이다. 아무리 단어를 외우고 개념을 정리해도, 실제 상황에 부딪히면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기억이 ‘맥락’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상황 기반 기억(situated cognition)은 우리가 환경 속 단서에 따라 반응하며 기억을 회상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억지로 기억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기억을 이끌어내도록 맡기는 편이 훨씬 덜 고통스럽고 더 효과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볍게 시작하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방향만 설정하고, 청사진만 머릿속에 그린 채 일단 시작하는 용기. 이 용기는 완벽주의를 내려놓는 순간 생겨난다. 완벽하게 하려는 마음이 강할수록, 우리는 지체하고 불안해지고,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반면, 어설픈 시작이 결국 삶의 흐름에 올라타게 만든다.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진정한 지혜는 ‘지금 할 수 있는 만큼을, 일단 해보는 것’이다. 시행착오는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이며, 자기 자신과 삶을 연결해 주는 다리다.

완벽하지 않게, 그러나 정직하게.
그것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