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의 이야기
“기억나? 예전에 가게에 가끔 오곤 했던 우리 사촌 오빠. 이번에 또 이혼했다는 거야. 그럼 나이 쉰에 벌써 네 번째 이혼이라고.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 오빠는 지금까지 장인어른이 네 명이었다는 얘기지. 웃긴 건 오빠가 엑스(ex)들이랑은 그렇게 사이가 다 틀어졌으면서 유독 장인어른들이랑은 친하게 지냈다는 점이야. 왜 그런 남자들 있잖아, 형들이 괜히 예뻐하는 동생 스타일. 그게 오빠였던 거지. 오빠 얘기를 듣다 보면 그들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을 사랑이라 정의해도 한 치의 모자람이 없어.
-자네…라는 호칭 대신에 이름으로 편하게 불러도 되겠는가?
-물론이죠 장인어른… 아니 형님.
그래서 그 오빠 요즘 뭐 하는지 알아? 장인어른들이랑 같이 풋살팀 꾸려서 공 차러 다녀. 듣기로는 두 번째 장인이 에이스라더라. 어쩌면 우리가 이해한다고 믿고 있는 ‘관계’라는 개념은 개 목줄 같은 게 아닐까 싶어. 눈에 뻔히 보이고, 그렇기에 누군가를 개같이 구속할 수 있고, 또 그렇기에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거지. 나도 자기도 무언가 틀렸어.”
그렇구나. 나는 틀렸다고 한다. 확실히 그런 것 같군. 아닌 게 아니라, 1년 전에 카페 일을 그만둘 때까지만 하더라도 점장이라는 사람은 담백한 에스프레소 리스트레토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오늘 그녀의 주름진 인중에서 풍기는 향기의 농도는 오히려 에스프레소 룽고처럼 쓰디써서, 내 혓바닥 위 돌기들을 일제히 세차게 일어서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12년간 얼굴을 마주 보며 일했으면서 단 한 차례도 알지 못했을까. 지금 당장 내 앞에 놓인 카푸치노를 들어 연식이 꽤 된 그녀의 목구멍에 쑤셔 넣고 싶다. 그러면 그녀는 차마 전부 삼키지 못해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카푸치노를 손으로 닦느라 화장이 다 벗겨지겠지. 나는 카페인 중독에 걸린 파리한 실험쥐처럼 충혈된 눈으로 내 눈을 노려보는 그녀에게 이제
모르겠다.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
점장님 사촌오빠는 혹시 게이가 아닌가요?
아니지
점장님 사촌오빠의 몇 번째 장인어른이 게이인가요?
아니야
점장님은 개 목줄과 관계를 맺고 싶진 않으신가요?
그래
내가 쓴 가사를 낭독해 주자.
<카페 의식>
네모난 카페 내부에 네모난 키오스크 앞에서
네모난 얼굴을 연신 찌푸리는 노인들을 보며
네모난 스마트폰을 건드리며 킥킥 큭큭 찍찍
네모난 웃음을 짓는 젊은 아르바이트생 지희
네모난 쥐새끼 같은 점장은 늙지 않은 척하며
네모난 돈을 침 발라 세면서 찍찍찍찍찍찍찍........... ○<깨갱 너무 무력해)
“언제나처럼 얼굴이 동그랗구나 자기는.”
“다시 일하고 싶습니다.”
“자기 그거. 자기 앞에 놓인 카푸치노 말이야. 그거 내가 공짜로 내어 준 거야.”
그렇구나. 이번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스스로 모르고 싶어서 모르는 건지, 몰라서 모르는 건지, 애초에 모른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다만 명확한 지점이 하나 있다면 카푸치노에서 이제는 더없이 강력한 척력이 발생하여 내 몸이 탁자 밖으로, 카페 밖으로, 네모 밖으로 자꾸만 밀려나기 시작했다는 것일 테다. 눈을 질끈 감고 발에 힘을 꽉 싣는다. 일해야 합니다. 한 자리에서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죽은 번견의 충의를 표상케 하는 나의 부동자세에 점장님은 이내 탄복하듯 입술을 끈적하게 벌려댔다.
“찍찍찍찍.”
“네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깨갱 깨갱 깨갱 깨갱 !
카페 밖은 귀찮을 정도로 여전히 여전했다. 그래서인지 곤이를 데리러 유치원으로 가기가 귀찮기가 그지없다. 하늘에는 곤이를 닮은 시츄를 닮은 해님이 시끄럽지 않게 짖고 있었다.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곤이가 비처럼 내려서 내 품에 쏙 들어오면
어떡하지.
어떻게 변명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누구한테 물어보지. 아 생각났다. 전 장인어른들과 풋살을 하는 어떤 멍청한 사내는 쥐새끼를 닮은 얼굴이었던 것 같다. 그는 이전에 나를 보고 어떤 얼굴이라고 생각했을까? 상상해 보니 불쾌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 관심이 심히 불쾌하다. 그와 나는 불쾌한 관계임이 틀림없다. 틀림없이 오늘은 불쾌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