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긍정과 부정' 16/24

‘부정’을 부정하기 힘든 이유

by 물음표

* 이 글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실험 또는 철학 및 인문학 유명인들의 주장이나 저서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그러나 만약에 형이 그 사고로 죽었다고 해보죠.

제가 덤덤하게 받아들였을까요? 아니었을 겁니다.


처음에는 형 탓을 했겠죠.

'그러게 진작 낮에 출발하지, 조심 좀 하지' 하면서 더 이상 못 보는 형이 그립고 보고 싶어서 죽은 형에게 화를 냈을 겁니다.


그리고 이내 제 탓을 하겠죠.

'내가 일찍 깨웠다면... 운전 조심하라고 말이라도 할 걸... 내가 운전할 걸...' 같이 말입니다.


또 형이 살아남긴 했지만 장애가 생겼다면, 형도 비슷했을 겁니다. 처음에는 그 물체를 떨어뜨린 이를, 그 다음엔 갑자기 차선을 바꾼 앞차를, 튼튼하지 못한 차를 욕하겠죠.


그러고선 끝내

'일찍 갈 걸... 조심 할 걸... 이상하다 생각했으면 뭐때문인지 빨리 살펴볼 걸...' 같이 자책을 했을 겁니다.


이처럼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한 후에는 보통 후회를 하게 됩니다. 왜 후회를 할까요?


일이 벌어지고나면 이전에 할 수 있던 것들, 내가 하지 않았던 것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들을 한다고 사고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는 확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률 자체는 낮아지긴 했을 겁니다.


그러니 이전에 얘기했던 '긍정과 부정'에서 '제3자의 입장에서 본다'고 말한 것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단지, 부가적인 설명이 매우 부족한 표현이었을 뿐이죠.


그리고 이 부족한 설명이 이전의 해석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즉, 앞서 '긍정'에 대해 말한 거와 같이 '부정'에 대한 이전의 해석 역시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얘기인 것이죠.


실제 세상에 외부로부터 발생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이번에 운동하다 다치게 된 이유나 형이 겪은 일처럼 실질적으로는 외부에서 발생되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대다수이겠죠.


그렇기에 제가 이전에 쓴 '부정'은 이론적으로는 타당할지라도 죽은 지식입니다. 현실에서 적용하기가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적용하기 위해선 한 발 더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한 발은 앞서 '유학?일기'에 적은 '否 아닐 부'에 대한 추가 해석을 더해 보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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