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은 과거의 나를 복원하는 선택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실험 또는 철학 및 인문학 유명인들의 주장이나 저서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는 이성적이고 의식적이지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는 그 상황에 당황하며 감정적이고 본능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죠.
앞서 말씀드린 예전 예시처럼 다친 것에 분노하며 운동을 쉬고 제가 먹는 걸 선택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문제가 발생한 바로 그 순간에는 이성적이고 의식적으로 사고하여 ‘새롭게 바라는 것’을 찾는 방법은 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아니, 그 순간에 새롭다고 생각되는 것은 오히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미 감정과 본능에 오염돼 있을 확률이 높죠.
그렇다면 '긍정'은 불가능한 걸까요?
아닙니다. 다만,
그 순간에 해야 할 것은 새로운 것을 찾는 게 아닙니다.
바로 그 일이 발생하기 전,
내가 바랐던 것,
가장 이성적이고 의식적이던 때에 원했던,
바로 그것을 다시금 떠올리는 겁니다.
여행을 가는 도중 차 사고가 났다고 해보죠.
차 사고가 나기 전에 내가 이성적이고 의식적으로 바랐던 것은 여행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차 사고라는 '부정적' 상황 이후에는 새롭게 할 것을 찾기보다는, 이전에 바랐던 여행을 재개할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죠.
물론 차 사고라 함은 누군가는 크게 다치기에 거동조차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여행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는 것이죠.
일반적으로는 이런 사고 방식에 빠져 도저히 '긍정'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성적이고 의식적으로 바랐던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죠.
기존에 설정한 목적지를 가는 것이 ‘여행’일까요?
아니면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여행’일까요?
네, 목적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곳을 '벗어나 떠나는 것'이
'여행'입니다.
이번에 제가 한 선택도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제가 운동을 하고 식단을 하는 이유는 살을 빼기 위해서였습니다.
살을 빼는 것이 주된 목적이며 이를 위해 선택한 행동들이 운동과 식단인 것이죠.
이때 제가 다침으로써 예전에는 운동과 식단 둘 다를 포기한 겁니다.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선택한 것이죠.
반대로, 이번에는 똑같이 다친 것에 분노했지만
제가 이성적으로 의식적으로 바랐던 것인 '살 빼는 것'을 바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식단조차 실패할 수 있었던 병에 걸려서도 마찬가지였죠.
제가 '즐거운 것'(살 빼는 것)을 하기로 정했기에, 둘 다를 현재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즉, '즐거운 것'이란
부정적인 상황이 벌어지기 이전에
내가 처음 목표로 삼았던 것,
평온한 상태일 때 바라던 것,
그것이 바로 '즐거운 것'입니다.
그렇기에 '긍정'이란
'부정적'인 상황임에도 감정과 본능에 휩싸이지 않고
내가 정말 원하고 즐거운 것을 정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사고 방식을 하는 게
바로 '긍정적' 사고인 것이죠.
여기에 더해
‘즐거운 것을 정하는 긍정’을 하면 이전에 말한
‘정해진 것을 즐기는 긍정’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