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긍정과 부정' 24/24

진짜 긍정은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by 물음표

* 이 글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실험 또는 철학 및 인문학 유명인들의 주장이나 저서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다시금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긍정'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그러니 그 상황의 내가 '부정적'이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상황인데 '부정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그 결과는 즐겁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사고 방식의 결과물은 언제나 자기파괴적인 현실을 마주하게 만들죠.

이 또한 원하던 것이 아니며 바라던 것이 아닙니다.

즉, 후회를 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긍정'은 '부정적'인 상황에서 '즐거운 것'을 ‘새롭게’ 찾는 것이 아닙니다. '부정적' 상황이 발생하기 이전의 평온한 내가

이성적이고 의식적으로 바라던 것. 바로 최초의 욕구,

그것으로 돌아가 다시금 정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이라면, 초반에 들었던 예시인 자식이 죽은 부모도 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즐거운 게 있을 수 없을 겁니다. 단언컨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부정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럼에도 한번 떠올려 보도록 노력해 보죠.

평온한 상태, 즉 자식이 살아 있을 때 자신이 가졌던 최초의 욕구, 이성적이며 의식적으로 바라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말이죠.


아마 대부분의 부모들이 바라는 것은 '자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일 겁니다. 자식이 오래 사는 것도, 건강하길 바라는 것도, 잘 되길 바라는 것도, 전부 자식이 행복했으면 좋겠기에 바라게 되는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자식이 행복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부모님이 행복한 것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부모님이 행복하게,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바라는 것이 자식의 행복입니다. 그러니 자식이 죽었더라도,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식이 사랑해 마지 않는 부모 자신들이

행복하게, 오래 건강하게, 다 즐기며 사는 것.

이를 통해 오래도록 세상에 나의 자식이 존재했음을 기억하고 알리는 것.


이것이 최악의 상황에서 유일하게 최초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며 '긍정'입니다.


이 밖에도 수 많은 사람이 다양한 '부정적'인 상황을 경험할 겁니다. 거기에는 최악인 경우도 많을 겁니다. 또,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겠죠.


그럼에도 후회할 일,

감정적이고 본능에 맡겨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게 되는,

즐겁지 않은 것을 거부하는 것.


그럼에도 즐겁기 위해

설정했던 목표를 잊지 않고 다시금 정하는 것.


그럼에도 정해진 것을 온전히 즐기는 데 집중하는 것.


외부에 의해 막히고 가려질지언정,

'나'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고 온전히 누리는

'나'의 주체성을 잊지는 않겠다는 선언.


이것이 바로 '긍정'입니다.


제가 해석한 ‘긍정’ 그 어디에도 '일어난 상황에 의한 감정을 거부하며 즐거운 것만 생각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부정'도 마찬가지죠.

내가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고 방식으로 '제3자의 위치로, 선택권조차 내팽개치고 도망가지는 말라'는 겁니다.


그러니 슬프면 마음껏 슬퍼하십시오.

울고 싶으면 펑펑 울어도 됩니다.

화내고 싶으면 실컷 화내고,

짜증이 나면 짜증을 내도 됩니다.

이 모든 감정 또한 그 순간에 충실하다는 의미니까요.

당연한 겁니다.


그러나 끝난 뒤에는 잊지 않고

내가 원했던 자리로,

즐거웠던 자리로,

내가 정했던 곳으로,

다시금 가는 겁니다.

제자리로 가면 되는 겁니다.


내가 즐기려고 정한 것은,

내가 정했기에 즐기려는 것은,

감정이 아니니까요.


부디 제가 알아낸 '긍정'이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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