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화요일] 봄과 꽃으로 피어날 모자람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해(年)가 거듭할수록 두려워지는 것이 있다. 나이에 걸맞은 어른이 되지 못할까, 으레 연차에 기대되는 실력을 갖추지 못하는 사람이 되진 않을까. 이 두려움은 세상에서 1인분의 몫을 마땅히, 기왕이면 잘 감당하고 싶은 열망이 있는 한 드리워질 수밖에 없는 그림자다. 그림자는 존재하는 것의 흔적일 뿐, 그림자의 본체인 잘하고 싶은 마음의 씨앗을 키워내는데 정성을 쏟아야 한다.

식물의 생장 과정에선 적당한 온도와 광합성, 습도 같은 식물이 좋아하는 환경이 필요하지만 인간의 성장 과정은 그리 달콤한 환경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 듯하다.

첫 야외 예능 촬영을 나갔을 때였다. 스폿 A에서 촬영하는 동안 다음 스폿 B에서는 촬영 준비가 이루어진다. 지체 없이 촬영을 이어가기 위함이다. 당시에 난 스폿 B의 선발대였다. 사전 세팅을 하나씩 마치며 중간중간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첫 야외 촬영인지라 허둥지둥 그 잡채였다. 사전에 조율된 내용대로 협조해주지 않는 담당자를 설득하는데 온갖 시간을 다 쓴 덕에 촬영 동선, 소품 등 현장 컨디션을 제대로 확인하고 갖추지 못했다. 담당 피디, 조연출과 병렬적으로 준비할 융통성 같은 것도 없던 때였다.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중간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이미 메인 작가님께서는 화가 많이 나셨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차가운 표정과 날카로운 목소리로 나무라셨다. 촬영 내내 잔뜩 기가 죽어 의기소침해 있었다. 나의 모자람이 수치스러웠고 원망스러웠다. 촬영은 다행히도 나의 모자람과 상관없이 무사히 끝났다. 얼마나 다행인가. 나의 모자람이 폐를 끼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메인 작가님과 단둘이 우연히 마주친 순간, 무슨 용기였는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다시 한번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작가님의 답변은 예상치 못한 따뜻한 온도로 포근하기까지 했다. “응응~ 다음부터 안 그러면 돼~”.

나보다 경험도 많고 실력도 저만치 앞서간 선배들이 나무라는 이유는 명백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임을 인지시키고,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 나의 모자람을 확인시켜주는 선배들의 쓴소리가 달콤할 리 없다. 마음을 후벼 파는 날카로움에 아파하기도 하고, 바닥에 주저앉은 자존감에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왜 변화와 성장은 마냥 달콤할 수 없는 걸까. 어찌하여 고통과 수치를 동반하는 걸까. 걸음마를 떼기 위해 넘어지고 일어서길 반복하는 것처럼, 두 발 자전거를 자유롭게 유영하기 위해 수십 번 넘어져봐야 하는 것처럼. 꽃이 피기 위해져야 하는 것처럼, 봄이 오기 위해서 겨울을 지나야 하는 것처럼, 거듭되는 시행착오들을 겪어야만 하는 걸까.

나의 모자람도 겨울을 지나 봄이 되어줄 수 있을까? 한아름 피어날 꽃이 되어줄 수 있을까? 봄과 꽃이 되어줄 오늘의 모자람에 상처받아 탓하지 말고, 잘 보살펴야겠다. 봄이 될 수 있도록, 꽃으로 필 수 있도록 -





[요마카세] 화요일 : 읽히지 않은 인생

작가 : 세렌디피티

소개 : 긴 시간을 살진 않았지만 깨달음 중 하나는 야심 찬 계획은 기꺼이 어그러지며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통제되지 않는 인생의 파편들은 마음에 흉터를 내기도 하고 의욕으로 곧게 서 있는 두 다리를 꿇어앉히게도 합니다 마음의 흉터는, 꿇어앉은 다리는 ‘인연, 우연, 기회’라는 전혀 다른 모양과 색깔의 가능성을 만나 아물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 걸어갈 힘을 얻으며 인생이란 팔레트에 스스로 낼 수 없는 다채로운 색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만났던 그리고 여전히 만나고 있는 ‘인연, 우연, 기회’를 들려드려 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월요일] 200만 원만 벌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