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공부했던 세월이 아깝지 않니?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하루 한 시간씩 요가대강으로 일하며 지내다 보니, 이건 그저 하루살이 인생이었다.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또다시 이 악물고 달려야 하나, 아니면 정말 수련자의 삶을 살아야 하나 앞이 내다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내가 명확한 미래를 그리려고 하는구나,” “내가 계획된 미래에 살고 싶어 하는구나,” 알아차리려고 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 있는 연습이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미래를 그리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었다. 경쟁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도 나는 여전히 온몸에 힘주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애씀‘에 습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느 날, 전화가 울렸다. 교수님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나는 아직 안동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드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셨지...
“그래, 다정아, 잘 다녀왔냐?”
“네, 교수님, 건강하시죠?”
“그래, 이제 논문 쓸 준비는 좀 되었니?”
교수님 눈에는 나는 여전히 잠시 쉬고 싶어 하는 학생이었다. 나는 다시 어영부영 교수님 연구실로 들어갔다. 논문을 쓰기 시작했지만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새벽에 글을 보다가 미국에는 어떤 요가원을 운영하고 있나 들여다보고, 외국에는 어떤 흥미로운 요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나 찾아보기에 바빴다. 나는 ‘놀기’에 바빴다.
그렇게 한 달을 버틴 후, 나는 용기 내어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교수님, 저는 취직하겠습니다. 박사의 길은 저의 길이 아닌 듯합니다.” 교수님께서는 내가 요가에 진정으로 빠졌다고 하셨다. 또, 요가의 세계는 예술적이며 학계와는 또 다른 세계라며 흔쾌히 나를 보내주셨다. 나의 꿈을 펼치라며 말이다.
한 두 번씩 요가대강을 나가는데, 고정적으로 나와 호흡을 나누는 회원이 없어 아쉬웠다. 어느 날 수업 때 이런 느낌을 받았다. ‘이 회원님과 계속 호흡을 나누고 싶다. 나와 수업을 꾸준히 하시면 몸도 좋아지시고 마음도 편안 해지실 텐데..’ 그래서 대강이 아닌 고정적인 센터로 출근하고자 했다. 이력서를 내고 프리랜서 계약서를 따냈다. 첫 직장(?)이라며 싱글벙글 신났지만 부모님 눈에는 나는 여전히 취미로 돈을 벌고 있는 아이였다. 요즘은 N잡이 대세이니 스케줄 분배를 잘해서 평일에는 일 하고, 주말에는 요가하면 대단한 N잡러가 될 것이라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왜 N잡러가 되어야 하지? 의문이었다. 나는 그저 요가가 좋았다. 그리고 요가에 있어 나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수련에 임했고, 진심으로 회원님들과 호흡을 나눴다. 내가 요가를 통해 위로받은 것처럼, 더 많은 이들이 나의 수업을 통해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했다. 누구나 애쓰고 있지만 그 ‘애씀’을 매트 위에서는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건네어 주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고정적으로 다니는 센터는 두 개, 세 개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요가강사가 되어있었다. 내가 요가강사가 된 것은 용기가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나의 정체성이 정치학도에서 요가강사로 바뀌지 않았다.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들은 이렇게 내게 말했다. “너의 학력을 포기하고 요가강사가 되다니, 너무 대단한데?” 나의 학력은 요가 지도자가 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경력 있는 강사님들에 비해 나는 턱없이 부족한 초보 강사였다. 나는 그저 어영부영 하루하루를 지냈을 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내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땅을 밟다 보니 내가 있는 자리가 여기였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요가강사가 되어 있었다.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