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어때? 새로운 팀을 만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면 던지는 동생의 단골질문이다. 좋은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언젠가부터 글쎄… 지내봐야 알 수 있지 않겠냐는 다소 회의적인 답변을 내놓게 된다. 아마도 반복된 기대와 실망, 그 과정에서 생긴 움푹 파인 상처들을 남긴 경험이 낳은 방어적인 태도일 것이다. 어느 날, 후배 동생도 비슷한 마음이라고 하던 대화에서 너도 그렇구나, 우리 말고 다른 사람도 그럴까? 하는 엇비슷한 상처들을 기대하고, 살짝은 위로받기도 했다. 방어적인 태도가 나만의 것이라면 나를 돌아보는 성찰을 넘어 나의 문제라고, 내가 문제라고 자책의 수렁에서 헤엄치고 있었을 테니까.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의 장점 중 하나는 ‘끝’이 보인다는 것이다. 정규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구태여 내가 끝내지 않아도 정함이 있는 끝은, 그때까지만 버티자는 힘이 되어준다. 거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날이 다가온다는 것, 두 번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해방된 날이 있다는 것은 광명 그 자체다.
본디, 후배의 모자람을 채워주는 길잡이가 되어주고, 때론 후배의 권익을 보호하고 챙겨주는 칼과 방패가 되어 주기도 하고, 억울할 땐 고자질도 들어주는 것들이 선배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의 선배들이 적지 않았다. 후배를 방패 삼아 숨어버리고 책임을 회피하거나 체력적이든 마음의 여유든 자신의 벅찬 숨을 응급 처치하기 위해 날카로운 마음들을 뱉어 내는 선배들도 더러 있었다.
선배는 선배대로 어렵고, 후배는 후배대로 어렵다. 기왕지사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여기는 나는 후배 업무 중 나눠하거나 도울 수 있는 건 같이 하는 편이다. 위계로 엄격히 구분되어 어려운 선배이기보다 편안한 선배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힘들 땐 힘들다고 푸념도 하고 도와달라 하소연도 하고 궁금한 건 언제든 편히 물어볼 수 있는 그런 선배. 선배로서의 도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때로는 편안한 선배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만만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닌데 라는 후회화 회환으로 바뀔 때도 종종 있다.
그래도 감사한 건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은 동료 선후배들도 있었다. 섭외리스트, 취재록, 보도자료, 자막, 구성안, 인터뷰 질문지 등 후배의 손이 닿는 것이라면 면밀히 살피며 밤새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주던 선배, 퇴근을 미뤄두고 이러쿵저러쿵 피드백 주던 선배, 원활한 팀워크를 위해 사적인 관계를 내세우지 않았던 사려 깊은 선배, 모자람이 채워졌을 때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손발이 척척 맞던 후배. 이런 선후배 동료와 함께 할 때면 정해져 있는 끝이 야속할 정도이다.
좋은 사람이란, 단순히 일을 잘하는, 마음이 잘 맞는, 성격이 서글서글 둥글둥글한 이들로 규정하기엔 내 마음을 꽉 채우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어때?’ 출발점에서는 답하지 못했던 그 질문을 나는 언젠가부터 질문을 바꿔 끝나는 길목에서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또다시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지.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그렇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란 다음을 기약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 또한 나를 누군가가 훗날을 기약하고 싶은 사람으로 여겨준다면 좋겠다는 마음을 그려본다.
[요마카세] 화요일 : 읽히지 않은 인생
작가 : 세렌디피티
소개 : 긴 시간을 살진 않았지만 깨달음 중 하나는 야심찬 계획은 기꺼이 어그러지며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통제되지 않는 인생의 파편들은 마음에 흉터를 내기도 하고 의욕으로 곧게 서 있는 두 다리를 꿇어앉히게도 합니다 마음의 흉터는, 꿇어앉은 다리는 ‘인연, 우연, 기회’ 라는 전혀 다른 모양과 색깔의 가능성을 만나 아물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 걸어갈 힘을 얻으며 인생이란 팔레트에 스스로 낼 수 없는 다채로운 색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만났던 그리고 여전히 만나고 있는 ‘인연, 우연, 기회’ 를 들려드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