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화요일] 이상한 버릇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를 쑥스러운 듯 슬쩍 건넨다. ‘가장 좋아하는 과자라고 해서-’ 분명 먹으라고 줬을 텐데 먹을 수 없었다. 그날 내게 온 과자는 목적을 잃었다. 아니 내게 목적을 빼앗겨버렸다. 먹는 건 고사하고 과자박스조차 뜯지 못한 채 서랍 속에 고이 모셔 두었다. 먹어 사라지는 게 아까워서. 빈 봉지만 남기고 사라지는 게 과자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처럼 느껴져서 먹질 못 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이는 형태의 무언가로 간직하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이다. 보통 1년쯤 되는 과자의 유통기한이 임박할 때까지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결국 먹지 않았냐고? 아니, 아주 맛있게 먹었다. 대신, 그 과자 비닐봉지와 박스는 한참 동안 여전히 서랍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방 한켠 어딘가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있다. 차마 버리지 못해 깊은 구석에 묵혀둔 마음이기도 하다. 아직은 너와 나였던 때에 장난스레 주고받은 장난 가벼운 쪽지들, 그랬던 너와 내가 우리로 묶였던 계절들에 주고받은 장문의 편지들과 선물. 영원이길 바랐던 우리들의 현재가 이제는 기억과 기록으로만 남아버린 과거의 잔해들이 작디작은 상자에 가두어져 있다.

번호를 몰라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초연결사회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그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정보의 홍수 가운데 살고 있지만, 어쩐지 너와 나는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것처럼, 아니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것처럼 멀기만 하다. 거리도, 마음도. 유일하게 우리를 연결시켜 주는 건 아주아주 가끔 네가 나타나는 꿈이다. 너의 꿈을 꾼 날이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그리워하다 보면 보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가득 차오른다. 볼 수 없음에 눈을 감는다. 기억 저편에 있는 너를 보기 위해 눈을 감아 본다. 전할 수 없는 마음이, 이제는 무의미 해져버린 그리움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답답함을 달래 보려 먼지 켜켜이 쌓인 판도라의 상자를 꺼내 본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한껏 고양된 그리움과 사무침을 잠재우기는커녕, 보고 싶다 말하니까 더 보고 싶다. 사진을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노랫말이 나의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부터였다.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오래도록 수면 아래 있다가 넘실넘실 제 멋대로 파도치기 시작한 감정을 어딘가 종이에 왈칵 쏟아냈다. 보고 싶을 때마다. 그리울 때마다. 궁금할 때마다. 그렇게 2년 넘게 50통의 편지를 썼다. 보내지 못할 편지를, 부치지 못한 편지를.

과자는 간직하고 싶은 호감이다. 버리지 못한 상자는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이다. 하얀 종이 위에 꿈틀대듯 적어 내린 마음은 사무침과 그리움이다. 과자, 작은 상자, 편지는 마음에 마음을 가누려 했던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던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다. 흘러가는 마음을 곁에 잡아두는 버릇들이었다.


작품명: 절찬리 기록 중

작가명: 세렌디피티

소개: 쓰고자 하는 마음에 사로 잡히다가, 이제는 쓰고자 하는 마음을 붙잡아 놓질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버렸습니다. 무엇이든, 어찌 됐든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쓰는 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