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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죽음에 대하여(3)

요가에서의 생명과 죽음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생명과 죽음은 모순적이다.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깊게 잠겨 있던 시절,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이 고통이었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상기시키곤 했다. 그러나 죽음을 갈망하는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정말로 살고 싶다’는 간절함을 동시에 느꼈다. 살고 싶으면서도 살고 싶지 않은 이 모순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외조부의 죽음 앞에 나는 생명의 고귀함과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가 가족에게 남긴 온기와 사랑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조용한 증언이었다. 요가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생명과 죽음은 별개의 개념이면서도 하나된 모순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인도 철학에서 생명은 지바(jiva), 즉 ‘개별화된 자아’로 설명된다. 지바는 영원한 의식(Purusa)과 일시적인 몸과 마음(Prakrti)이 결합된 존재로, 무지(avidya)로 인해 참된 자아(Atman)와 자신(Brahman)을 동일시하지 못하고 윤회의 사슬 속에서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 요가 수행은 이 지바가 무지에서 벗어나 참된 자아를 자각하고,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원한 자유, 즉 해탈(moksa)에 이르는 길을 알려준다. 육체의 죽음이 지바(생명)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또 다른 생명체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윤회의 사슬을 벗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육체의 테두리 안에 머무르며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요기는 명상과 수행을 통해 지바를 육체의 한계에서 벗어나 영원한 죽음(열반,nirvana)에 이르게 하는 것이 최종 목적지이다.


요가 경전인 <요가 수트라>에서 파탄잘리는 인간 고통의 근원을 다섯 가지 클레샤(klesa)로 설명하는데, 그중 하나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애착(abhinivesa)이다. 이는 단순한 생존 본능이 아니라, ‘자신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정체성의 애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가는 이 집착을 알아차리고 초월함으로써, 몸에 대한 과도한 동일시를 내려놓고, 더 깊은 자아를 바라보는 길을 제시한다. 요가학파는 생명을 ‘프라나(prana)’ 흐름으로 이해하는데, 이는 생명을 관통하는 근원적인 에너지로 해석된다. 이 에너지를 조절하고, 섬세하게 다루는 훈련이 바로 자세(asana)와 호흡(pranayama)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사는 것’을 넘어, ‘깨어 있는 삶’을 추구한다. 이는 매 순간이 덧없음을 인식하면서도 정성껏 살아가는 태도를 의미한다.


요가의 또 다른 경전인 <카타 우파니샤드>에서는 소년 나치케타가 죽음의 신 야마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생명과 죽음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야마는 말한다:”어리석은 자는 육체의 죽음을 끝이라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참된 자아(atman)는 죽지 않음을 안다.” 이처럼 죽음은 실체의 소멸이 아니라 껍질의 탈피다. 육체라는 외피는 벗겨질 수 있으나, 의식은 순화하고, 확장하며, 해탈을 향해 나아간다. 따라서 인생의 여정은 끊임없는 “Who am I?”를 향해 가는 여정일 뿐이다. 이 여정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면서도 생명을 경외함으로써 시작된다. 우리가 살아 숨 쉬어야 나에 대한 질문이 가능하며, 해탈하지 못한 채 죽으면 또 다른 윤회의 사슬 안에 갇혀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가는 진심으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되 영원한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을 가르친다.


아사나 수련의 마지막 행법-사바사나(죽음의 자세)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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