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목요일] 1 vs 20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운 좋게도 올해부터 매일 초등학교에 가 아이들에게 요가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렇게 5곳 다른 학교에 가니 일주일에 만나는 아이들이 최소 70명은 족히 넘는다. 긴장이 넘쳤던 첫날,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윤이, 하은이, 하율이, 지완이, 재환이, 재완이… 점 하나, 받침 하나 차이로 달라지는 다양한 이름의 세계, 아이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세종 대왕의 깊은 뜻에 나도 모르게 감탄한다. 그러다 아이들의 이름을 조금이라도 다르게 불러, 아이들의 격노가 들리면 한편으로는 아주 조금 원망스럽다. 세종대왕님…! 그래도 아이들은 일주일에 고작 1시간 30분 나와 시간을 보내는데, 올 때마다 나의 수업을 기다렸다는 말과, 안아주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접은 종이 피아노를 선물로 준다.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수업을 시작하면, 준비해 둔 수업을 진행하는 것보다 아이들 집중과 관심을 이끌게 하는데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그중 유독 눈에 튀는 아이들이 있다. 내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나를 도와주는 아이들이 있다면, 한번 말할 때 듣지 않고 세 번 물어봐야 그제야 관심을 보인다. 옆 친구에게 계속 장난을 걸다가, 결국 옆 친구를 울리는 아이, 따라 하라는 나의 말에 가만히 있는 아이, 수업 중간에 갑자기 나가는 아이, 짧은 집중력을 가진 아이의 본능, 성향이라기 보기에는 어려운 모습이다.


놀이치료를 공부하며 가장 많이 듣는 단어는 아마도 ADHD, 지적장애, 경계성 지능 장애, 자폐스펙트럼 어쩜 이리 종류는 많은지. 다양한 아이들의 이름처럼 새로운 진단명을 접하고, 생각보다 높은 유병률에 놀랍기만 하다. 각 증상을 들으면서, 그 증상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한두 명씩 떠오른다. 이론에 따르면 이런 아이들은 1:1 개별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전체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에게 집중해 달라고 화내는 나 스스로가 부끄러우면서도,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하다. 나는 아직 전문적인 치료사도 아닌, 아이들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재밌게 해주는 시간 강사라 아직은 그 이상은 할 수 없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고 싶어 수업 끝나고 그 아이에게 개별적으로 찾아가 따뜻한 포옹을 선물한다. 그럼, 금방이라도 아이는 나에게 웃으면서 왜 그랬는지, 선택적 묵언을 하던 아이도 입을 열어 종달새처럼 쉴 새 없이 본인의 이야기를 해 준다. 나쁜 아이가 아니라 그냥 온전함 관심을 기다리고, 필요한 아이였구나. 비슷하지만 점 하나 차이로 하윤이와 희윤이, 하율이가 다른 아이인 것처럼 아이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이해받기 원한다.


아이들은 20명, 나는 한 명. 혼자 아이들의 이름처럼 각기 다른 마음과 이야기를 가진 이들을 모두 이해하고 품어주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은, 완벽하지 않아도 귀를 열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비록 한 명의 시간 강사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다.


(오늘도 학교에서 많은 아이를 인솔하는 초등학교 선생님들 정말 존경합니다.)


B5F2F0FD-1C3A-4DA8-8181-253DB6251AEC_1_102_o.jpeg



[요마카세] 목요일 : 어린이의 위로

작가 : 아리

소개 : 어쩌다 조카 3명과 살게 된 싱글레이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수요일] 죽음에 대하여(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