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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어른의 기쁨, 아메리카노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캐러멜 마키아토 1잔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커피를 주문한다. 탐앤탐스 1+1 커피 쿠폰이 생겼기 때문이다. 뭘 시킬지 몰라 시트콤 논스톱에서 한예슬이 매일같이 시켜 먹던 마끼야토로 주문한다. 마키아토가 커피의 전부인 세상이라니.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니 어쩐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이 맛에 커피를 먹는 건가.


아메리카노 주세요. 으. 그 쓴걸 무슨 맛으로 먹어? 먹어봐 한번 먹으면 계속 아메리카노만 찾게 돼. 대학생이 되니 카페에 갈 일이 잦아졌다. 유난히 조숙한 민아는 혼자만 줄곧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그 속에서 버블티, 밀크티, 아이스크림을 돌려 먹으며 1학년을 보냈다. 학년이 지날수록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먹다 보니 사약 같은 쓴맛도 그럭저럭 참을만했다. 한 손엔 아메리카노, 나머지 한 손엔 넷북을 끼고 학교 후문으로 가는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올랐다. 몇 번을 오르내렸을까. 이젠 아메리카노 없이 못 사는 직장인이 되었다.


출근해서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이 너무 당연해졌달까. 아메리카노가 없던 인생은 전생처럼 까마득하다. 뭐 마실래?라는 물음에 망설임 없이 따뜻한 아메리카노라고 답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어느덧 10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대학생 때 상상한 직장인은 사원증을 맨 채 한 손엔 커피를 들고 하이힐을 신고 멋지게 일하러 가는 모습이었다. 그땐 알지 못했다. 커피라도 털어 넣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30대 직장인 라이프를, 아메리카노는 살아내기 위한 탕약이란 사실을 말이다.


머리가 아플 때마다 회사에서 커피를 내린다. 잠깐이라도 환기가 필요하다. 어째 커피를 먹으니 머리가 더 아픈 것 같다. 어라? 파블로프 실험의 개처럼 커피 향만 맡아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찌 된 일일까. 커피가 당기지 않는다. 몸이 거부한다. 하루 이틀 손을 떼고 보니 5일 내내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커피 없으면 못 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쉬운 이별이 있다니. 내가 회사를 끊어 내질 못하니 몸이 커피를 끊어낸 건가.


주말 아침 눈뜨자마자 카페로 향한다. 쫀득한 베이글에 따뜻한 커피를 주문한다. 커피 냄새는 향긋하기만 하고 머리는 멀쩡하다. 여유를 즐긴다. 커피는 어른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니까. 주말엔 기꺼이 어른이 된다. 회사에선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메리카노 맛을 모르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요마카세] 월요일 : (흑)역사 모음집

작가 : 흐름

소개 : 현재에 살자 집착하는 사람. 문득 지금의 나를 만든건 과거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꽂힌다. 과거의 내가 미래를 만든다면, 과거는 미래요 미래는 과거가 아닌가. 흑역사가 미래가 될 순 없어 써내려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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