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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이도저도 인생 2회 차

개발자가 되면 이도저도 다 해볼 줄 알았다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대학교를 이도저도 다 하는 학과를 갔다.<디지털미디어학과>. 이름만 보고 사실 뭘 배우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세 개의 선택지 중에서 집이랑 가깝고 그중 제일 재미있어 보이는 학과를 골랐는데, 어째 나랑 똑같은 학과를 골랐는지 정말 정체성도 모르겠고 이것저것 다 하는 학과였다. 웹프로그래밍, 카메라, 포토샵, 영상, 3D개발, 게임개발, 사물인터넷 프로그래밍 진짜 이도저도 다했다.


새로운 거라면 다 재미있어하는 성격이라 배울 때는 재미있게 배웠는데, 문제는 막상 취업할 때가 되니까 뭐로 취업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친구들은 그중 하나를 잘 골라서 취업을 다들 하는 것 같은데 나만 이상하게 그 많은 것들 중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매 순간 하나하나 열심히 배우고 재미있게 배웠는데 왜 나는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같지?


그즈음 꽂혀있던 서비스가 있었는데 그게 에어비앤비였다.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에어비앤비를 많이 썼는데, 거기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호스트가 만들어놓은 작은 문화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이 너무 좋았다. 나도 저런 호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에어비앤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어떻게 거기서 일할수 있을까 생각했더니 거기서 개발자를 뽑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어 나 개발할 줄 알잖아?’라는 생각에 그럼 개발자가 되어야겠다!라고 직업을 선택했다.


에어비앤비가 매력 있었던 이유는 어디를 가도 같은 곳이 없었다. 매 순간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개발을 하면 이런 경험도 자동으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개발자가 되면 내가 원하는 서비스 어떤 거든 다 경험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에어비앤비에 취업은 못하더라도, 매력 있는 서비스를 하는 곳에서 개발을 하면 내가 그 서비스를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실상 에어비앤비 같은 매력 있는 회사는 고사하고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내가 뭐 때문에 개발자가 되었는지 깔끔하게 잊어버렸다. 에어비앤비 같은 그런 서비스를 만드는 일원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는 그냥 면접 볼 때 살짝의 포장지 역할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8년 만에 다시 또 나는 취업을 하지 못해 고민하던 그때보다 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개발자로 경력은 쌓여있는데, 나는 또 뭘 하고 싶은 거지? 뭘 잘하지? 개발자로 일하면서 버는 돈 덕분에 (혹은 때문에..) 관심사는 더 늘어나버려서 가지가 너무 무성하게 뻗쳐있었다. 그리고 개발자로서의 커리어패스를 탐색하기보다는 개발자가 아닌 나의 모습을 즐기지만 개발자라는 직업으로 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에 간신히 꾹꾹 억제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가만 보면 퇴사는 정해진 결말이었을지도. 터져 나온 밥풀처럼 여기저기 뻗치는 관심사가 결국 여기저기 다 튀어져 나온 것 같다.


이도저도 아니었다가, 그중에서 이도저도 다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개발자를 했는데 결국 또 이도저도 아닌 것 같아서 개발자로서 무던하게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그리고 다시 이도저도 다 하는 삶 속에서 또 다른 답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 그 답은 과연 ‘개발자’ 같은 하나의 단어로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직업이라는 개념으로 결론이 날 수 있을지 무한한 고민이 시작된 것 같다. (에휴)



[요마카세] 작품명 : 이도저도 인생

작가명: 리엠

소개: 삶이 이도저도 아닌 것 같아, 이도저도 다 해보면서 살아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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