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엄마 죽으면 내가 슬퍼할까?” 어느 날 엄마에게 물어봤다.
할머니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사람이기에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눈물 한 방울 흘릴 것 같지 않았다.
“그럼 안 울게?” 워낙 눈물이 많은 딸이 그렇게라도 말하니 이야기하니 서운한가 보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아빠와 떨어지는 시간을 좋아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수련회 국룰, 눈물 없이 못 버티는 캠프파이어 앞에서도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아이였다. 또 어느 날은 엄마의 강요 없이 스스로 일주일 영어 캠프를 신청하고 입소까지 했다. 친구들은 밤마다 공중전화로 콜렉트콜을 걸어 울먹이며 “엄마…”를 외쳤지만, 나는 오히려 엄마와 떨어져 친구들과 선생님과 지내는 시간이 좋았다. 영영 떨어진 것도 아닌데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는 친구들이 그저 신기해했다.
어릴 적 유학을 떠나서도 엄마와의 통화는 일주일에 한 번 있을까 말까였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걸 배우고 있는지 이야기하기보단, 전화가 오면 괜히 성적표 때문일까 봐 긴장했던 기억이 더 또렷하다.
그런 나와 달리, 요즘 수업 시간에 만나는 아이들은 엄마를 자주 찾는다. 쉬는 시간만 되면 휴대폰을 꺼내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나 실내화 안 챙겼어. 어떡해?” “엄마, 나 1교시 끝났어. 이제 2교시야.” “그거 엄마가 하지 말랬어요~”
엄마가 하지 말라는 건 족족 다 해버리는 30대의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엄마의 말을 믿고, 엄마에게 묻고, 엄마를 찾는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엄마'라는 존재의 무게를 생각하게 된다. 어릴 적 나는 잘 느끼지 못했던 건지, 아니면 점점 잊어가고 있는 건지 엄마의 소중함을, 지금은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다. 아이들의 일상 속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괜히 엄마에게 더 다정하게 말을 걸게 되고, “오늘은 어땠어?” “별일은 없었어?” 엄마의 하루가 어떤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이 내게 보여주는 애착 덕분에 나는 조금 늦게라도 엄마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다시 배워가고 있다.
[요마카세] 목요일 : 어린이의 위로
작가 : 아리
소개 : 어쩌다 조카 3명과 살게 된 싱글레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