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중학생 때 미스터피자에 가면 샐러드바가 있었는데, 거기서 내가 제일 좋아하던 과일은 리치였다. 껍질은 까맣고 울퉁불퉁해서 처음엔 좀 생소했지만, 껍질을 까서 하얀 과육을 한입 넣으면 달콤하면서도 동남아 과일 특유의 향긋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친구들이랑은 리치를 먹으러 피자집에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다 베트남에 와서 진짜 리치를 봤는데, 내가 알던 리치랑은 전혀 다른 모습에 깜짝 놀랐다. 거무스름하던 껍질은 어디 가고, 선명한 빨간색에 분홍빛이 도는, 보기만 해도 싱싱한 과일이 눈앞에 있는 거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는 껍질이 검게 변하면 신선도가 떨어진 것으로 여겨 잘 먹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한국에서 먹었던 리치들은 냉동되어 수입된 것이라 껍질이 어둡게 변한 것이었고, 나는 그 어두운 껍질을 리치의 본모습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리치는 빨간색이라는 사실은, 꽤 큰 충격이었다. 이후 한동안은, 동남아 다녀온 사람이 “냉동 망고 말고 진짜 망고 먹어봤어? 맛이 달라” 하며 부리는 망고 자랑처럼, 나도 ‘리치 부심’을 부리고 다녔다. 친구들과 연락할 때마다 “나 요즘 여기서 리치 먹거든? 네가 아는 리치는 리치가 아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베트남에서 리치는 망고스틴과 함께 비교적 고급 과일에 속한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건, 차갑게 식힌 아이스티에 리치를 띄워 마시는 방식. 한동안 리치에 푹 빠져 있던 때엔, 회사 동료들이 집에서 수확한 리치를 한 아름씩 챙겨다 주기도 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검은 리치를 마주하면 그 빨갛고 향긋했던 리치가 문득 그립다. 같은 과일인데도, 참 다른 기억과 풍경을 담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요마카세] 토요일 : 색도 맛도 화려한 열대과일들
작가 : 열대과일러버
소개 : 열대과일 직접 맛보고 즐기고 그립니다 (But 여름ha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