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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남의 떡이 커보일 때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좀처럼 대화가 없는 대학교 모임 단체 톡에 알림이 울린다. 누구 생일이겠거니 했는데 갓 태어난 아기 사진이 잔뜩 올라온다. ‘자연분만을 시도했는데 우량아로 제왕절개를 할 수밖에 없었어.’ 축하한다는 말이 이어지고 곧바로 자동차 사진이 올라온다. ‘아 그리고 차도 새로 뽑았어.’ 차에 관심이 없어도 그 차가 얼마나 비싼 지는 안다. 아기를 자랑하려는 걸까, 차를 자랑하려는 걸까. 나는 그와 사촌도 아닌데 배가 아프다. 아기가 있는 삶도 1억이 넘는 차를 모는 것도 갑자기 너무 탐난다.

어제부터 먹고 싶던 경양식 돈가스 맛집을 검색한다. 배고픈데 뭘 먹고 싶은 지 모르겠다는 말에 어제의 내 입맛을 네가 기억한다. 집에서 걸어서 25분이나 떨어진 곳이지만 아이가 없는 우리는 망설임 없이 길을 나선다. 걸을 때마다 뒤꿈치가 쓰라린다. 며칠 전 비가 왔을 때 양말까지 젖어 양말을 벗고 걸어 다닌 게 화근이었다. 신발에 맨 살이 닿아 까졌다. 그땐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걸었다. 다음날 걷기가 불편해 알아차린다. 영 거슬리지만 애써 외면한 채 걷는다. 명장이 만든 돈가스는 무척 만족스럽다. 원하는 농도의 소스와 고기 두께다. 소스까지 싹싹 긁어먹고 사장님께 너무 잘 먹었다 인사도 잊지 않는다. 집으로 가는 길 여러 개의 부동산을 지나친다. ‘우리 이 동네로 이사 올까?’ 부동산에서 붙여 둔 집값을 살핀다. ‘맨날 돈가스만 먹고살 순 없잖아.’ 네 말에 이내 마음을 접는다.

오자마자 침대에 눕는다. 점심 먹고 햇살 가득한 산책까지 마치니 잠이 솔솔 온다. 너는 4일 연휴 내내 먹어 몸이 무겁다며 거실에 요가매트를 깐다. 버피와 푸시업으로 연신 앓는 소리를 낸다. 네가 땀 흘리는 소리에 맞춰 잠이 든다. 너무 더워 잠에서 깬다. 5월인데도 쌀쌀해 전기장판을 틀었다. 땀에 젖은 츄리닝이 잘 벗겨지질 않는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잘걸.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낑낑대고 있으니 네가 부리나케 와 옷 벗는 걸 도와준다. 왜 이렇게 땀을 많이 흘렸냐며 바지를 세탁기에 바로 넣는다. 우리는 흰 빨래만 따로 하면 된다. 아기 옷을 따로 빨 필요는 없다.

집에서 하는 운동이 성에 안 찬 넌 저녁엔 달리기를 하겠다 한다. 진짜 저녁이 되니 금세 마음이 바뀌었는지 나가지 않겠다 선언한다. ‘당신이 뛰러 가면 난 카페에서 글이니 쓰려고 했는데.’ 내 말에 다시 마음이 바뀌어 뛸 준비를 한다. 서로는 서로의 이유가 된다. 너는 뛰러 가고 나는 카페에 앉는다. 뛰는데 30분 정도 걸린다. 그 사이에 무엇이든 써야 한다. 눈을 감고 강렬한 감정을 떠올린다. 질투. 인정하고 말해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글을 너무 잘 쓰는 그녀, 아기와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가족, 새로 산 그의 차 내부 갈색 시트가 떠오른다. ‘아! 차 수리해야 하는데’ 그의 새 차에서 10년 된 우리 차가 떠오른다. 뒷바퀴 위쪽에 코팅이 떨어져 나가 붉게 녹이 슬었다. 어느 날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제가 차 빼다가 선생님 차를 박아서요. 나와서 좀 보셔야겠는데요.’ 번호판만 정말 살짝 긁혀 그냥 보낸다. ‘옆구리 박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그렇지?’ 큰일 날 소리라 말했지만 속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공원을 다 뛴 그가 카페로 들어와 생각이 흩어진다. 티셔츠는 땀으로 젖고 얼굴은 시뻘겋다. 그에게 마시다 만 커피를 권하고 자리를 정리한다. 가방을 챙겨 카페를 나선다. 뒤꿈치는 여전히 아프다. 이번엔 참지 않고 네게 내색한다. ‘아이고, 아프겠다‘ 온갖 인상을 쓰고 네가 반응한다. ’괜찮아. 금방 괜찮아지겠지’ 나보다 더 아파해주는걸 보니 괜찮은 것도 같다. 네 손을 꼭 잡고 걷는다. 그래 내 떡도 이정도면 크다!




[요마카세] 월요일 : 그냥 살 순 없잖아?

작가 : 흐름

소개 : 이해할 수 없는 인생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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