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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서울 위 곡예사를 꿈꿔요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좁지만 곧고 길게 뻗은 도로를 달린다. 후후- 거칠게 몰아쉬던 호흡이 앞뒤로 팔을 치는 리듬을 따라가며 안정을 찾는다. 그제야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감각이 살아난다. 오른쪽에는 푸른 하늘을 지붕 삼아 펼쳐 흐르는 한강이 보인다. 얼굴과 손끝에는 여전히 떠나지 못한 겨울의 한기와 봄의 계절을 꽃피울 따스함이 섞여 기분 좋은 온도의 바람이 스친다. 적당히 차오르는 숨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하, 행복하다’. 동시에 마음 한편에는 멍울이 맺힌다.

어느 날 문득 의문이 생겼다. 서울에서 지낸 지도 10년. 난 서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스스로 던진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서울 사람이 아니면 난 어디 사람이지? 원주(고향) 사람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따금씩 방문하는 고향은 성형이라도 하는 듯 생경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별다른 안내 없이도 이리저리 다닐 수 있는 고향이었는데, 이제는 내비게이션 없이는 길을 잃고 마는 이방인이 되었다. ‘난 서울 사람인가?’ 불현듯 떠오른 의문의 구름은 먹구름이 되어 마음을 먹먹하고 무겁게 만들었다.

어딘가 소속되는 것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다. 구속과 속박을 극도로 기피하는 편이다. 그런데 서울 사람도 고향 사람도 아닌 것 같은 무소속감에 무척이나 괴로웠다. 존재가 튕겨져 내쳐진 기분이었다. 뿌리가 뽑혀 방치된, 터전을 잃은 나무 같았다. 탄생과 돌봄의 시간을 지나온 고향은 과거에 더 잘 어울리는 곳이 되었고, 현재의 시간을 사는 서울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서울이라는 현재가 미래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자신 없었다. 연애는 하지만 짝사랑하는 느낌이랄까. 퍽 외로웠다. 한 번도 그렇게 느낀 적이 없었는데 서울이라는 도시에 겨우 기생(生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J 언니가 뜬금없이 질문을 한다. 너한테 서울은 어떤 곳이야? 잠깐의 고민 후 대답했다. “음- 계속 머물고 싶은 곳”. 꽤 다정하게 들리는 이 대답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못하다.

실상은 아주 절박하다. 서울은 외줄 같았다. 그 위에 덜컥 올라선다. 생존에 가까운 몸부림이 시작된다. 서울이라는 외줄에서 떨어지진 않을까 잔뜩 겁먹은 겁쟁이,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어떡하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주고 있는 억척이, 무섭고 지치면 포기하고 내려올 법도 한데 무엇이 미련인지 좀처럼 내려오질 못 하는 미련퉁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며 한발 한 발 내딛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실상을 마주했을 때, ‘나는 서울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바뀌었다. ‘나… 서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남고 싶은 마음을 ‘머물고 싶다’는 말로 돌려 말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언젠간 이 줄 위에서 앉고, 서고, 뛰는 곡예사가 되고 싶다.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며 -



작품명: 절찬리 기록 중

작가명: 세렌디피티

소개: 쓰고자 하는 마음에 사로 잡히다가, 이제는 쓰고자 하는 마음을 붙잡아 놓질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버렸습니다. 무엇이든, 어찌 됐든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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