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함께 박사를 준비했던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잘 지내? 우리 점심 먹자. 너무 오래 못 봤다.”
그 친구는 어엿한 직장인이, 나는 요가강사가 되어 있었다. 각자 “직장인”과 “프리랜서”의 길로 잘 들어섰다. 어영부영 시작한 요가강사 일이 감사하게도 월~토 아침저녁으로 꽉 차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2년째 “저는 요가강사예요..(?)”라는 물음표 대답으로 나를 소개하고 있었고, 정체성의 혼란은 여전히 내 몸 안에 내재되어 있었다.
친구의 선약이 마냥 기쁘기만 했다. 내가 공부했던 국제정치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회사생활을 재밌나, 어떤 느낌일까, 이 친구는 정말 박사를 포기한 것일까 등등 너무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대뇌였다. 나는 점점 내가 살아왔던 세상과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편안하면서도 불안했다. 내가 지금 국제기구나 NGO로 취업하지 않으면 점점 취업의 문턱은 높아질 텐데, 계속 요가강사로 살아가도 괜찮나? 어쨌든 친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궁금했다.
“잘 지냈어? 바쁘지? 회사생활은 어때?”
“너는? 뭐 하고 지내? 아직도 요가해?”
사실 이런 질문을 종종 들었다. 아직도 요가하냐는 질문 말이다. 나의 물음표 대답 때문일까, 친구들이 보기엔 요가강사인 나는 그저 취미생활을 하며 방랑하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나에게 요가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사랑했고 진심으로 수용했다. 나를 아껴주고 보듬어 준 존재이기에, 요가를 매개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친절과 자비를 알리고 싶었다. 당신도 편안해질 수 있다고, 애쓰지 않아도 당신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이다.
“그럼~나 요가강사야. 요새 매일 티칭해. 어쩌다 보니 일이 많아졌는데, 좀 줄여야 될 것 같아.”
일을 줄이고 싶을 만큼 수업 수가 많아져서 힘들어하던 참이었다.
“그래? 그럼 바쁘겠네? 어떡하지?”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우리 회사에 중국팀이 있는데 급하게 사람을 구하게 됐거든. 내가 생각나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서. 이제 이쪽 분야는 안 하는 거야?”
친구의 제의에 당황하면서도 좋기도 했다. 마음이 닿은 걸까? 요가강사를 하면서 마음속 한편에는 국제정치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뉴스에서 나오는 미중분쟁이라던가, 중국의 역사라던가, 국가 정체성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맑눈광으로 조잘조잘 신나게 이야기하곤 했다. 가끔은 논문도 읽어 보고, 박사를 다시 지원할까 교수님도 찾아보고, 취직을 해야 하나 구직공고를 보기도 하곤 했다. 그러나 또다시 마음의 고통이 올라올 때, 이 길로 가는 것이 집착인가 노력인가를 헤맸다.
“관심은 있지. 내가 하면 뭘 해야 하는데?”
“사실 나도 잘 몰라. 우리는 다른 팀 업무를 잘 모르거든. 거기 매니저님이 너 학부 선배인데 다음 주에 같이 점심 먹을래? 그때 자세히 물어봐.”
그렇게 나는 영문 모를 제안을 받고 일주일을 기다렸다. 요가강사의 월급사정은 좋지 않기 때문에 국가 지원사업이라던가, 보조금이라던가, 이것저것 잘 챙겨야 조금 편히 살 수 있었다. 만약 여기에 들어가면 내가 받고 있는 지원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지, 담당하는 업무는 무엇이 되는지, 페이는 얼마일지 등등 질문이 참 많았다. 그렇게 궁금증을 품에 안은 채 약속한 날짜 2 일 전에 카톡이 하나 날아왔다—"다음 주 화요일에 한 시간 일찍 오셔서 저희 팀장님과 면접을 보셨으면 합니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카톡이었다. 혹시 나의 의견이 친구에게 잘못 전달된 것일까? 나는 회사에 들어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무슨 업무를 담당하게 되는 거냐고 물어본 것이었는데 면접이라니. 강사 생활을 하며 9-6로 일 하는 직장인들이 너무나도 대단해 보였다. 나는 그렇게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무기력하고, 노력과 집착사이를 헤매고 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에게 카톡을 했다. “혹시 나 거기서 일 하고 싶다고 말했어? 나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 다음 주에 면접 보라는데? 무슨 일이야?”
그러자 친구는 진짜 면접은 교수님 8분 이서 뉴스도 읽게 하고, 요약도 하고, 전공 관련 질문도 한다며 실무진 면접은 그냥 ‘나’라는 사람이 알고 싶어서 대충 얼굴 한 번 보는 거라고 답했다.
D-Day
약속한 날짜가 다가왔다. 회사까지 도착하기 30분 전. 무언가 싸한 기분이 온몸을 감싸왔다. 조짐이 좋지 않다. 급하게 핸드폰을 켜고 회사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회사 설립철학, 주요 사업, 그리고 자기소개(한/중/영)를 얼른 준비해 보니 어느덧 회사에 도착했다.
두근두근. 점심 약속 아니었나? 면접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야.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두 면접자 앞에 착석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해 주세요.”
앗.. 역시, 자기소개 준비하길 잘했다.
“자기소개를 영어와 중국어로도 가능한가요?”
‘나’라는 사람을 자그마한 입술로 조잘조잘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작은 입술이 1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나의 생각을 담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름 면접의 정석대로 잘 포장해 입 밖으로 꺼내 보았다.
“자, 이제 제가 한국어로 말할 테니 중국어로 통역해 주세요.”
……? 이건 진짜 면접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현재 미중분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어로 답해 주세요.” 아니 이건 너무하잖아. 나는 점심 먹으러 왔다고 ㅠㅠ 다행히 계속 읽었던 논문과 뉴스 덕인지 또다시 자그마한 입술로 조잘조잘 답하기 시작했다. “15분의 시간을 드릴게요, 주어진 내용을 중국어로 요약해 주세요.”
……
그렇게 한 시간의 시험이 끝났다.
면접장에서 나와 친구를 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나 시험 봤어! 통역도 하고, 번역도 하고, 요약도 하고 다 했는데?”
“나도 몰라……”
무슨 회사가 서로 소통을 안 하나, 다 모른다더라.
어쨌든 점심을 맛있게 먹고, 여김 없이 오후에 수련을 나가고, 저녁에 티칭을 나갔다. 그때 카톡이 하나 또 날아왔다.
“목요일부터 출근하실 수 있으세요?”
당황스러웠다. 면접을 망친 줄 알았는데 당일에 합격통지(?)를 해 주셔서 당황스러웠고, 나의 온갖 질문은 물어보지도 못했는데 출근 통보를 받아서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이 순간 나는 선택해야 했다. 출근하거나, 거절하거나. 어떤 것이 노력인지, 어떤 것이 집착인지 여전히 헤매고 있는데, 지금 당장 대답을 해야 하는 낭떠러지에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예전에 이런 글귀가 생각났다. 너의 마음의 목소리는 3초 안에 답한다고.
3,
2,
1,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요가원 일정이 있어서 목요일은 어렵고 다음 주부터 가능할까요? 화/목은 아직 그만두지 못한 요가원이 있어 당분간 5시에 퇴근해야 할 것 같은데 가능할까요?”
나의 답은 출근이었다. 그렇게 나는 월/수 요가강사, 화목금 직장인, 주말 과외 선생님이라는 다양한 직업을 갖게 되었다. 또다시 어영부영 N잡러가 되었다.
“내”가 선택에 기로에 들어섰다고 생각했을 때, 착각하지 말자. 아직 우리는 그저 길을 가고 있는 것뿐이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생각과 계획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뿐이다. 진짜 선택의 순간에는 우리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오른쪽으로 갈까, 왼쪽으로 갈까 고민하고 있을 때에는 그 고민 끝에 내가 근본적으로 해야 할 것, 그것 하나만 하면 그만이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영어 단어 외우기, 수련 나가기, 명상하기, 책 읽기 등등 분명 오른쪽과 왼쪽 중앙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준비이다. 선택에 기로에서 기회를 잡고 싶거든 준비를 하자. 오로지 준비된 자에게만 그 기회가 주어진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오늘 하루 조금이라도 해내었다면 되었다. 당신은 그렇게 오늘 하루도 잘 보내었다. 평온히.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